꾸란 학문의 개척자, 모하마드 유수프
1960년 카라치 방송국의 첫 벵골인 수석 카리(Qari)로 활동했으며, 1964년 파키스탄 TV 첫 방송 당시 직접 꾸란을 낭송했다.
1963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 꾸란 낭송 대회에 파키스탄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흐마드는 아버지를 "온 남아시아 아대륙에서 꾸란의 순수한 낭송과 꾸란학 분야의 선구자"라고 표현했다.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뜻을 이은 셰이크 아흐마드 빈 유수프가 걸어온 길
1960년 카라치 방송국의 첫 벵골인 수석 카리(Qari)로 활동했으며, 1964년 파키스탄 TV 첫 방송 당시 직접 꾸란을 낭송했다.
1963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 꾸란 낭송 대회에 파키스탄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흐마드는 아버지를 "온 남아시아 아대륙에서 꾸란의 순수한 낭송과 꾸란학 분야의 선구자"라고 표현했다.
1966년 유수프는 6점 요구 운동의 조직가로 참여하며 독립 운동에 나섰다. 파키스탄 내에서 '벵골 바부', '인도 스파이' 등 차별적 언사에 시달렸으나, "우리에게는 실제로 자유가 필요하다"며 활동을 계속했다고 아흐마드는 회상했다.
독립전쟁 발발 후 파키스탄 정부는 유수프에게 해고 조치를 취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공군 제자들의 도움으로 신분을 위장해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귀국했다.
방글라데시 독립 후 유수프는 이슬람 재단(Islamic Foundation) 설립을 제안해 성사시켰다. 아흐마드는 "아버지는 어느 권력에 있든 꾸란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아우르 라흐만 대통령 시기에는 학생 대상 꾸란 낭송 경연대회가 정례화되었고, 후세인 무함마드 에르샤드 대통령 시기에는 군(육·해·공) 아잔 및 꾸란 낭송 경연대회가 도입되었다. 유수프는 대통령들과 긴밀히 협력해 국가적 차원의 이슬람 문화를 정착시켰다.
1979년 유수프는 방글라데시인 최초로 카바 내부에 진입했다. 사우디 국왕의 초청으로 카바 내부에 45분간 머물렀던 그는 그곳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유수프가 기도한 내용은 자신의 아들이 "카리 바사타처럼 꾸란을 낭송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아흐마드는 "알라여, 제게 카리 바사타 같은 아들을 주소서"라는 아버지의 기도를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의 아흐마드 빈 유수프가 바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자라났다. 그는 아버지가 꿈꿨던 길을 따라 꾸란 학문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국제 무대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갔다.
2002년부터 8년간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공부한 아흐마드는 꾸란의 음성학(Phonetics)과 일곱 가지 암송 방식(Qira'at)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아랍 음악 이론과 악기 연주를 통한 발성 및 음계 훈련도 병행했다. 이는 이슬람 전통에서 꾸란이 일곱 가지 '하르프(문자/방언)'로 계시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아랍 음악 이론과 악기 연주를 통한 발성 및 음계 훈련을 병행했다. 이를 통해 꾸란 낭송의 음성학적 정밀성과 종교적 맥락을 함께 습득했다.
스승의 녹음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카이로에서 175km 떨어진 곳을 매일 왕복하며 4번의 교통편을 이용한 아흐마드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와 수련에만 매진했다. 스승의 음성 녹음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역사적 명소를 찾아다니며 빈 테이프를 직접 구매해 기록하기도 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하루 한 끼를 먹거나 때로는 2~3일간 물만 마시며 버텼다. 새벽 기도 후 길을 나서 밤늦게 숙소에 돌아왔다. 이 모든 헌신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나왔다.
그는 "공부에 대한 집중력은 아버지께서 기대하신 것, 아버지께서 보냈다는 신뢰를 져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집트 유학 시절 아흐마드를 친부모처럼 보살펴준 노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자녀가 없었으며, 경제적으로 힘들 때 월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명절을 챙겨주었다.
아흐마드는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먼 타국에서 온 유학생을 이 노부부가 곁에서 지켜주었다"고 표현하며, 고인이 된 노부부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 노부부가 무덤에서도 자신의 꾸란 낭송으로 축복받기를 바란다고 했으며, 이러한 관계가 "혈연보다 더 깊은 영적 인연"이라고 강조했다.
아흐마드는 전통적 종교 복장이 아닌 현대식 슈트를 입고 방송에 출연했다. 이는 종교적 거부감을 줄이고 일반 대중에게 꾸란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이었다.
"슈트를 입고 코란을 읽는 제 모습에 대중은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읽어주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이 아이들에게 코란을 가르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방송 출연 이후 은행원, 기업인 등 다양한 계층에서 꾸란 교육 요청이 쇄도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꾸란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다.
높은 학위와 전문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방글라데시 사회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기는 어려웠다. 아흐마드는 부친이 물려준 사역의 길을 잇고자 했으나 국내 환경의 한계에 직면했다.
결국 그는 현지 사역의 기반을 닦기 위해 두바이 종교성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그를 국제 무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흐마드는 2011년 제28회 이란 국제 꾸란 낭독 대회에 참가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250명의 참가자 중 예선을 통과해 결선 상위 5인에 진입했다.
최종 결과는 3위였다. 당시 1위는 이란, 2위는 인도네시아였고, 방글라데시 대표인 아흐마드가 3위를 차지했다. "거기서 3위를 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으며, 13,000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이 대회 참가는 아흐마드의 국제 활동을 여는 발판이 되었다. 대회 낭독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지며 그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그 낭독 영상이 전 세계로 퍼졌다. "1, 2위를 한 사람들보다 제 영상이 훨씬 큰 반향을 일으켰죠"라고 아흐마드는 말했다. 이후 여러 나라와 단체에서 초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바논 베이루트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탄자니아, 모로코, 브루나이 등 다양한 국가에서의 활동이 이어졌다. 자신보다 더 명성 있는 세계적인 꾸란 낭독가들과 같은 게스트로 대우받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모로코 라바트 왕궁을 방문했을 때 아흐마드는 국빈급의 예우를 받았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프로토콜 오피서가 왔습니다. 경찰 스콧 카가 앞뒤로 붙어서 VIP 게이트로 왕실 게스트가 머무는 라투르 하산 팰리스로 안내했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명목상 비공식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흐마드는 왕실급 의전을 제공받았다. 이는 그의 꾸란 낭송 활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러한 방문들을 통해 아흐마드는 세계적인 학자 및 저명인사들과 함께 초청받는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까지 아흐마드는 30개국을 방문했다. 각 나라마다 몇 번을 갔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활동량을 반영하듯 그는 이미 6번째 여권을 사용 중이다.
브릭스(BRICS) 콘퍼런스에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단순히 방문하는 것을 넘어 국제 대회의 평가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아흐마드가 아버지 모하마드 유수프가 꿈꿨던 국제적 무대에서의 종교 문화 사업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왜 방글라데시에 머무는지 물었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 대학의 초빙 제안이 많았지만, 아흐마드는 이를 거절했다.
"저는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를 떠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그는 밝혔다. 돌아가신 아버지 모하마드 유수프가 꿈꿨던 방글라데시 내 이슬람 문화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결심이었다.
국내의 소외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흐마드가 고국을 선택한 것은 가족의 유산과 약속의 무게였다.
아버지 모하마드 유수프는 모스크와 마드라사 복합 시설을 짓고자 했으나, 아다바르 지역의 부지가 2008년 불법 점유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흐마드는 자신이 받는 강연 사례비와 명예 비용을 펀드에 전액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비그라 지역에 새로 10카타(katha) 땅을 사들였다.
그는 "이번 겨울 시즌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아버지가 미완성으로 남긴 꿈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11년 아흐마드는 이란 국제 대회의 참가자였다. 13년이 지난 2024년, 그는 주요 국제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요르단 국왕 주최 대회 및 브루나이 술탄 주최 대회 등 세계적 규모의 대회에서 평가자로 참여하고 있다. 아흐마드는 "방글라데시인으로서 전 세계 여러 국가의 대회 심사를 맡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단순한 꾸란 낭송가를 넘어 국제 꾸란 문화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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