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출신, 9년 군복무, DMZ를 넘다
그는 자신을 "저는 북한 함경도에서 태어났고요. 17살에 북한군에 입대를 해서 9년간 군복을 했어요. 그리고 2024년 8월 20일 한국제22단 DMZ를 넘어서 대한민국에 도착한 새내기 탈북민 강민국입니다"라고 소개했다.
DMZ를 넘어온 탈북민 강민국이 전하는 북한 주민의 삶과, 통제가 삼킨 것들
그는 자신을 "저는 북한 함경도에서 태어났고요. 17살에 북한군에 입대를 해서 9년간 군복을 했어요. 그리고 2024년 8월 20일 한국제22단 DMZ를 넘어서 대한민국에 도착한 새내기 탈북민 강민국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예전에는 그런 삶을 무관심하게, 당연한 것·숙명으로 여겼다고 고백했다. 그 광경이 탈북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예전에는 북한 정권이나 주민들의 삶을 눈여겨보지 않았다기보다 무관심했고, 이런 생활을 숙명처럼 당연하게 여겼다고 돌아봤다. 한국 라디오를 듣고 정신의 변화가 오면서 체제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체제의 실체를 알게 된 뒤에는 주민들의 생활과 환경, 그리고 김정은에 대한 배신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코로나 봉쇄로 하루벌이로 사는 주민들이 굶어 죽고 석탄·물가가 10~20배 폭등해 겨울에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봉쇄가 되면서 집에 쌀을 쌓아둔 사람이 많지 않아 하루아침에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땔감인 나무도 없고 석탄도 없어 겨울에 주민들이 손도 씻지 못하고 샤워도 못 했다. 북한 주민 가운데는 오늘 벌어서 내일 먹거리를 장만하는 하루살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봉쇄가 시작되자 집에 쌀을 쌓아둔 사람이 많지 않아 하루아침에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석탄 등 물가가 10배에서 20배로 뛰면서 땔감인 나무도 석탄도 구할 수 없게 됐다. 겨울에 주민들이 손을 씻어보지도 못하고 샤워는 물론 기본적인 위생도 챙기지 못하는 삶이 그의 눈에 띄게 됐다고 한다.
그가 탈북 이후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북한 체제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군복무 9년 동안 북한 정권에 대한 불만이나 작은 우려조차 품어본 적 없는 충성도 높은 열성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한국 라디오를 들으면서 북한이 세뇌시키는 내용이 부당하고 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라디오는 그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세상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한 통로였다고 표현했다. 그의 판단으로는 북한의 선전이 거의 다 거짓이고 사실과 맞지 않는데도, 주민들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믿고 산다. 김정은과 지지층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핵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자신들이 못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때는 하루라도 이 땅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어서, 어떤 권한이 막아서도 무조건 뚫고 나가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공포감을 무릅쓰면서 위험 지수를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1차 탈북은 아무런 경험도 준비도 없이 시도했다가 붙잡히는 것으로 끝났다. 다행히 군복무 9년에 부사관 복무 기간이 길었던 덕에 부대에서 '탈북할 군인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아 유치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힘든 가정을 겪으며 건설 현장 등에서 노동을 했지만, 배고픔과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한국에 가야 된다'는 희망이 힘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8개월 후 다시 탈북을 시도했다. DMZ 근처에 가본 적이 없으니 경비병과 군무병이 어디에 배치됐는지, 지뢰가 어디 묻혀 있는지, 전기 철책이 몇 개인지, 잠복 초소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꼽은 가장 어려운 순간은 전기 철책을 넘을 때였다.
당시 전기가 흐르지 않는 상황은 아니었고 마른 나무를 터치해도 전기가 전달되는 정도였다. 사람이 붙으면 그대로 타 죽을 정도의 전기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당시 전기가 흐르지 않는 상황이 아니었고, 마른 나무가 닿아도 전기가 전달될 정도였으며 사람이 붙으면 그대로 타 죽을 수준이었다고 한다.
전기 철책 외에 지레밭을 넘는 것도 어려웠다. 이동하는 동안 먹을 것이 없어 굶고 물도 마시지 못했으며, 육체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많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제대를 1년 앞둔 시점에 탈북을 감행했다. 그가 본 것은 난방이 없어 햇빛을 쬐이는 주민들의 모습이었고, 거기에 자신의 미래를 대입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죽으나 사나 가야 된다, 한국에 가야 된다'는 심정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라였고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결론이었으며, 하루라도 벗어나 진짜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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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짚었다. 북한 정권이 한류 문화와 한류 콘텐츠 같은 외부 정보를 강하게 통제하는 탓에, 주민들이 한류를 갈망하면서도 정보를 입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부 정보가 없으니 주민들은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를 우물의 개구리처럼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인터넷이 되지 않는 나라가 북한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 정보를 접하고 인식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탈북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철책과 경계를 강하게 강화하고 중국 쪽으로 탈북할 수 있는 루트를 막아놓았다. 그는 북한이 보안 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본다.
탈북자들의 가족은 북한에 남아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 상황을 알기에 가족에게 돈을 조금씩 보내는데, 그는 이것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고 언급했다.
그 자신도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다 보니 북한의 가족과 지척에 돈을 붙여 주고 싶었지만 아직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주변에는 돈을 보내 가계를 유지하는 탈북자들이 많다. 탈북자들이 돈을 보낼 정도면 생활이 넉넉하다는 뜻이라며, 북한 주민들은 '나도 한국에 가면 잘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통제가 강한 탓에 주민들은 두려움 절반, 부러움 절반으로 속수무책으로 살고 있다.
그는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행기로 탈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중국·라오스·베트남 등에서 비행기로 온 탈북자들이 인천공항을 보면 크게 놀란다고 한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복지였다. 국민을 위한 복지가 세금에서 나오고, 그 세금으로 삶이 바뀌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목숨과 생명 안전이며, 이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과 복지, 교육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복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북한에서 넘어온 그에게는 비교가 된다. 북한과 한국은 비교 대상 자체가 안 될 정도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표현했다.
김정은이 언론에서 '인민의 생명 안전이 첫째다'라며 정치적인 쇼를 하고 말로만 외친다고 그는 비판했다. 그런 나라에서 아무리 외쳐도 실질적으로 복지를 위한 시스템은 전혀 없으며, 북한 사람들은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말한다. 결코 파리 목숨이 아니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한국에 와서 민주주의가 이렇게 좋은 것인지 알게 됐고 자유를 한껏 누리는 사람들, 국민이 첫째인 시스템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가 감동받은 것으로 꼽은 것 중 하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대한민국에 와서 정착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 주는 시스템을 보며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고,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살아서 삶이 재미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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