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와 시프, 러시아 공격 기획 주장
원본 영상 0:12진행자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영국의 로스차일드와 미국의 제이콥 시프가 러시아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려는 세 번째이자 네 번째 시도였다고 주장했다.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필수적인 요소로 변모하면서 금융 자본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쟁이 대형화되면서 군산복합 금융 산업과의 연관성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서방 금융 엘리트가 러시아 견제와 이권 확보를 위해 전쟁과 혁명을 기획하고 지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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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영국의 로스차일드와 미국의 제이콥 시프가 러시아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려는 세 번째이자 네 번째 시도였다고 주장했다.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필수적인 요소로 변모하면서 금융 자본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쟁이 대형화되면서 군산복합 금융 산업과의 연관성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아나톨 프랑스가 말한 "조국을 위해서 죽는 줄 알았더니 은행을 위해서 죽는 게 바로 전쟁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전쟁의 본질이 국가의 이익보다는 금융 세력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1906년 러시아가 22억 5천만 프랑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려 했을 때, 로스차일드의 배제로 인해 시장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유통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대한지 깨닫게 되었으며, 금융 협력이 곧 군사 동맹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되었음을 시사했다. 진행자는 "러시아는 이 당시에 로스차일드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았죠. 야, 이거 로스차일드가 없으면 러시아 정부 채권이 팔리지가 않는구나"라고 언급하며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서방 세계 딥스테이트의 원조로 알려진 영국의 원탁회의가 1909년 나탄 로스차일드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밝혔다. 이 원탁회의가 미국의 CFR(외교협회), 보헤미안 그로브, 스컬앤본즈와 같은 비밀 조직들의 원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그레이 외무장관이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세르비아의 적대 관계를 이용하여 세르비아의 혁명 단체인 '검은손'을 지원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원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전쟁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외교부는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차단하며 유럽 대륙의 전쟁을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유럽 각국 정부는 자신들이 무슨 이유로 전쟁하는지 전혀 모른 채 전쟁에 끌려들어 갔다고 분석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는 각각 외교, 군사, 경제, 금융의 상호 의존 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강대국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참전을 원치 않아도 거부할 수 없는 구조적 강제성 때문이었으며, 영국이 전쟁을 주도하고 다른 국가들은 끌려가는 형국이었다고 덧붙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일, 러시아, 오스만 튀르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모두 몰락했다고 언급했다. 프랑스는 승리했다고 평가받지만, 결국 국력이 약해졌고 이는 후일 히틀러의 침공에 취약해지는 배경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진행자는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독일, 러시아, 오스만 터키, 오스트리아 모두 망해버렸습니다. 나라가 망해버렸습니다. 프랑스는 승리했다고 하지만 결국은 나라도 약해졌고 결국은 히틀러의 밥이 돼 버렸죠"라고 발언했다.
영국은 중동 지역을 장악하고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스만 제국 함선을 나포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독일군에 함선 수색을 요청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진행자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당시 오스만 제국보다도 더 위험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경고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각국은 자발적인 의도보다는 산업 협력 관계에 의해 전쟁에 끌려들어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 역시 유사한 구조로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영국의 해외 융자 규모가 6억 5천만 파운드에서 72억 파운드로 급증하며 재정 파탄에 직면하자, 미국 참전이 절실해졌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시오니즘을 지지함으로써 유대 금융 자본의 지지를 얻어 미국 참전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1917년 1월 알프레드 밀러가 니콜라이 2세를 만난 직후 영국은 러시아에 대한 군사 병참 지원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병참 지원이 끊긴 러시아 군대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군인들이 페트로그라드나 모스크바로 향하여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영국이 1917년 3월과 4월에 시차를 두고 러시아 붕괴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유대 금융 자본은 한쪽 세력만을 지원하지 않고 좌파와 우파를 모두 양손에 들고 움직이는 "양비론자"라고 강조했다. 1917년 3월 27일 트로츠키와 그가 모집한 뉴욕 남단의 볼셰비키 275명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러시아로 들여보냈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 정권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볼셰비키 혁명 이후 레닌에게도 2천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내전 당시 13개 국가가 군대를 파병하여 러시아 영토를 점유하려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들 군대는 백군이 질 것 같으면 적군에게 붙고, 적군이 질 것 같으면 백군에게 붙는 식으로 행동하며 백군과 적군 모두 망하기를 바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내전을 통해 갈기갈기 찢어지기를 바랐다는 주장이다.
레닌의 볼셰비키가 빼돌린 6억 골드루블이 뉴욕의 폴 와버그에게 유출되었다고 밝혔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후, 볼셰비키 러시아는 스탈린에 의해 장악되었고, 스탈린은 유대계 혁명가들을 숙청하며 반 스탈린주의 세력을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소련 수뇌부 내 유대인들이 세계화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경계했으며, 러시아만의 독자적인 길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레닌 사망 직후부터 스탈린은 차근차근 유대 볼셰비키 정치 지도부를 제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부터 지도부에서 유대인들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스탈린은 1936년에 "뭔가를 깨닫고" 대숙청에 들어갔으며, 군대와 소비에트 내부의 유대 대표자들을 주로 제거했다고 밝혔다. 많은 유대인 대표자들이 NKVD(내무인민위원회)에 체포되어 독일 게슈타포로 넘겨졌다고 주장했다.
소련 지도부 내 유대인 비율이 1917년 85%에서 1938년 6%, 1940년 5%로 급격히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들을 권력에서 완전히 축출하면서 러시아가 세계 1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의 부가 바깥으로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952년 12월 정치국 회의에서 스탈린이 시오니스트 유대 민족주의자를 미국 정부의 간첩이라고 공개적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의사들이 스탈린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조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3개월 만에 스탈린이 의문사했다고 덧붙였다. 발언자는 의사 중에도 시오니스트들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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