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형 김성수보다 악명 높은 친일파로 지목돼
김연수는 1896년 8월 25일에 태어나 1979년 12월 4일 사망했다. 그는 동아일보를 설립한 형 김성수보다도 더 악명 높은 친일파로 지목된다. 진행자는 그를 “가장 악명 높은 친일 이력의 소유자”라고 단언한다.
형 김성수보다 악명 높은 친일 행적으로 지목된 김연수의 활동과 재산 형성 과정, 그리고 해방 후 그의 석방을 둘러싼 의혹이 다시 조명됐다.
김연수는 1896년 8월 25일에 태어나 1979년 12월 4일 사망했다. 그는 동아일보를 설립한 형 김성수보다도 더 악명 높은 친일파로 지목된다. 진행자는 그를 “가장 악명 높은 친일 이력의 소유자”라고 단언한다.
진행자는 "2018년에 문재인 정권에서 인촌 김성수의 공훈을 삭제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결정 이후 동아일보의 강한 반발로 서훈 환수 등의 후속 조치에 어려움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은 부동산 담보 대출 및 현금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진행자는 "식산은행에서 돈을 주고 뺏으려고 하면 식산은행은 현금밖에 못 빼들어요. 그러니까 뭐예요? 부동산을 빼들어야 될 거 아닙니까?"라고 설명하며, 식산은행이 부동산을 통해 자금을 수탈했음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조선식산조성재단은 민족 자본가의 토지를 빼앗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이러한 기구들은 친일파들이 민족 자본가의 재산을 조직적으로 수탈하는 구조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김연수는 조선식산조성재단이 수탈한 토지를 조선식산은행이 현금화한 자금을 대출받아 재산을 증식했다. 진행자는 "식산 은행으로부터 자금 대출. 그러니까 뭐냐면 식산 조선 재단으로 땅을 빼뜨어서 그거를 식산 은행으로 현금으로 싹 세탁해 가지고 김연수에게 갖다 바쳤다 이 말이야"라고 말하며, 이 자금 유입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1934년에 이 자금을 활용해 경성방직의 설비 규모를 세 배 확장하고 만주로 진출했다. 이러한 부동산 수탈의 역사가 교육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배경에는 동아일보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김연수는 만주 지역에 천일 농장과 반성 농장 등을 설립하여 독립군 자금줄을 차단하려 했다. 진행자는 "발해 농장을 아무것도 못 하게 하려고. 그니까 농장이 만주에서 좋은 농작물들을 만들어서 그거를 만주국에다 팔아가지고 그 독립군 자금으로 쓰려고 하니까 거기에 대응해서 천일 농장, 반성 농장 등을 똑같은 규모로 설립해 가지고 독립군 자금을 말려 죽이려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며, 이들 농장이 발해 농장 등에 대응하여 같은 규모로 세워졌음을 강조했다. 이 농장들은 만주국에 농산물을 판매하여 얻는 독립군 자금을 저지하고, 덤핑 판매를 통해 독립군의 경제 기반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진행자는 "1940년 만주 하울빈 오리엔탈 맥주 회사를 인수합니다. 저게 형태가 변해서 오비 맥주가 돼 있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이 회사가 이후 오비맥주로 변모했음을 밝혔다. 이는 김연수의 친일 행적이 현대 한국 기업의 뿌리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진행자는 "경성 통제 협력회 부회장 저 경성 통제 협력회는 뭐 통제하 독립운동가들 만주에서 또 중국에서 거기에 김현수가 자청에서 고문을 하는"이라고 말하며, 이 단체가 독립운동가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 왕징웨이 정권 및 만주국 정부와 연계하여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는 그의 친일 행적이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정치적 협력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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