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1948년 건국…로마 식민지 이후 유대인 이주 본격화
이는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열망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대인 국가 건설의 꿈부터 현재진행형인 중동 분쟁까지,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통해 팔레스타인과의 갈등 원인을 조명한다.
이는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열망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는 유대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시온주의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며, 이스라엘 건국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 선언은 유대인들의 로비에 따른 결과로,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들에게는 희망을 주었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영토 상실의 위협으로 다가왔으며, 이는 미래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팔레스타인에서는 대규모 아랍 항쟁이 발생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유대인 이주를 제한하고 10년 안에 팔레스타인 독립을 약속하며 아랍인들을 달랬다.
영국의 이러한 정책 변화는 아랍인들의 저항에 대한 일시적인 타협이었으나, 유대인 이주 정책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는 유대인 30%, 아랍인 70% 비율이었으나, UN 분할안은 유대인에게 전체 영토의 55~60%를 배정했다. 유대인에게 할당된 영토 중 상당 부분이 네게브 사막과 같은 미사용지였다는 점이 지적됐다.
아랍인들은 인구 비율에 비해 유대인에게 너무 많은 땅이 배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분할안을 거부했다.
이러한 불균형적인 분할안은 아랍인들의 본전 상실감과 함께 팔레스타인 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의 거점 국가로 인정받으며 외교의 중심을 미국으로 전환했다.
194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두르아지즈 국왕과 회담하여 석유와 안보를 맞교환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했다. 루즈벨트는 아랍인들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두 달 만에 사망했다.
루즈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미국 정책이 변화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운명 또한 크게 달라질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졌다.
팔레스타인 문제, 그거 지금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그거 절대 우리 아랍인들 눈에 눈물 나면 안 된다고 했었을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뭐냐면 걱정하지 말라 그랬어요. 아랍들 반드시 생각하겠다 얘기했거든요. 근데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나크바(대재앙)'로 불리는 1차 중동전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왔다. 과거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묘사되어 이스라엘이 열세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군이 아랍 7개국 연합군보다 훨씬 강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군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병력과 민간인 가세로 전력이 강화됐다. 반면 아랍 국가들은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무기 체계도 이스라엘에 비해 열세였다.
따라서 1차 중동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보는 것은 신화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통해 가자 지구,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등 넓은 영토를 점령했으나, 점령지 반환을 거부하여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다만 1979년 이집트와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시나이 반도를 반환한 전례가 있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점령은 팔레스타인과의 영토 분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했어요. 일단 국제 사회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죠. 6일 만에 사실 전쟁이 끝났다. 그래서 6일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이스라엘이 여기에서 땅을 많이 차지합니다. 그러면 전쟁이 끝나면 사실 그 땅을 돌려줘야 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협정을 추진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1995년 암살당했다. 이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암살 전례와 함께 중동 평화 노력에 큰 좌절을 안겼다.
라빈 총리 암살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가 집권하면서 이스라엘의 정치 분위기는 완전히 강경 노선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북쪽의 레바논, 남쪽의 가자지구와 이집트, 동쪽의 요르단, 북동쪽의 시리아 등 적국에 둘러싸여 심리적 포위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안보 트라우마는 생존을 위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특히 2023년 10월 7일 사건 이후에는 공격 가능 세력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강박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스라엘은 2005년 웨스트뱅크 철수에 앞서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 내주며 자치와 공존 가능성을 시험하려 했다. 그러나 가자지구가 하마스에 의해 장악되고 2007년부터 교전이 발생하면서 이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웨스트뱅크를 반환할 경우에도 하마스가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됐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대한 이스라엘 내 회의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내 하마스에 자금 유입을 허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는 하마스의 세력을 키워 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고, 이들의 독립 국가 건설을 저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2023년 전면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로카디 아이젠코트는 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높은 신뢰를 받는 군 조직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의 약점은 모로코 출신인 스파라딘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총리 중 스파라딘 출신은 없었으며, 이는 여당이 인종적 구분을 이용해 공세를 펼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최근 아들의 전사 사실 또한 그의 정치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종교 공부가 신의 법을 따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병역을 거부해 왔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용인되었으나, 하레디 인구가 급증하면서 현재는 병력 수급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레디당, 즉 초정통파 유대인을 우리가 하레디라 그럽니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요. 이 사람들의 자녀들, 청년들이 군대를 안 가기를 원해요.
로카디 아이젠코트 야당 후보는 하레디 병역 면제에 반대하며 병역의 평등을 강조하고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병역의 형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전쟁 장기화로 인한 이스라엘 군의 절대적인 병력 부족 문제와도 직결된다.
아이젠코트의 주장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병역 의무에 대한 논의를 다시금 촉발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 상황을 생존과 존망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로카디 아이젠코트와 같은 인물이 총리가 된다고 해도 중동에 갑작스럽게 평화가 찾아오고 전쟁이 끝날 가능성은 낮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안보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사를 깊이 따져보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같은 민족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역사적 아이러니는 중동 갈등의 복잡성과 비극성을 더욱 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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