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산골에서 온 남자, 이제 서울시 명예시민
Jump to 0:39보키예프 아흐로르종은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민이자 서울시 외국인주민회의 의장, 경기도 외국인주민 명예대사를 맡고 있다.
한국어 학원의 우연한 입학이 인생을 바꾼 보키예프 아흐로르존, 아내도 함께 석사까지 이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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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키예프 아흐로르종은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민이자 서울시 외국인주민회의 의장, 경기도 외국인주민 명예대사를 맡고 있다.
타지키스탄 산골 마을은 닭과 양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으로, 어릴 때 세상의 전부였다. 마을에선 군수도 만나기 어려웠고 동네 통장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인 서울의 시장님을 직접 만나 명예시민증을 받게 됐다. 서울의 인구 천만 명은 타지키스탄 전체 인구와 같은 규모다. 어머니도 함께 서울시청에서 아들의 영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 소식은 타지키스탄 언론뿐 아니라 태국, 포르투갈의 언론에서도 인터뷰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고향에서 자랑이 되었다.
그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절대적인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금까지 팔아서 아들의 학비를 마련했다. 나중에 서울시청에서 아들이 명예시민증을 받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니는 많이 울었다고 강연자는 회상했다.
처음엔 한국에 올 계획도, 한국어를 배울 생각도 없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고, 한글과 일본어 글자도 모두 동아시아 글자로 보여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자는 여정을 거치며 깨달은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은 혼자 바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 문을 열어줘야 하고, 그 열린 문을 지나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뜻이다.
강연자의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지만, 본인은 공부를 하지 않는 날나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가 뭔지도 잘 몰랐다. 마을에서는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소를 먹이고, 양을 돌보고, 계란을 팔아다니는 일이 일상이었다. 생존이 공부보다 우선인 환경이었다.
변화는 친구 아들이 미국을 다녀왔다는 말에서 시작됐다.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내 아들이라고 왜 못 가'라는 생각으로 동네 영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타지키스탄 산골에서 외국을 나가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처음 선생님은 학생이 너무 많고 기초가 없는 아이를 가르칠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3일 뒤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 진심으로 간절하게 애원했고, 결국 선생님이 받아주기로 결정했다. 그 영어 교실이 강연자의 인생을 바꾼 첫 번째 문이었다.
영어 교실은 닭장 크기 정도로 매우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강연자는 처음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미국을 다녀온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이 훨씬 넓다는 걸 처음 깨달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보고 싶다는 꿈이 생겨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공부를 시작한 강연자의 관심 분야는 IT와 항공우주였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 강대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를 배우기로 다짐했다. 한국과 한국어는 아예 생각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아는 한국이라곤 드라마 '주몽'과 '대조영', 그리고 시장에서 고려인들이 파는 '짐치(김치)'뿐이었다.
일본어 학원을 찾던 강연자는 건물 3층 복도에 윤동주 시인의 시가 걸려 있는 것을 봤다. 그는 그것을 일본어인 줄 착각했다. '와, 일본어 멋지다'고 생각하며 '여기가 일본어 학원 맞네'라고 확신했다. 상담해 준 직원도 일본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곳이 한국어 학원이었고, 일본어 학원은 1층에 있었다. 그 직원도 알고 보니 러시아어를 쓰는 고려인이었다. 이 작은 실수가 강연자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강연자의 첫 한국어 수업은 2013년 4월 9일이었다. 수업을 담당한 강솔지 선생님의 45분 강의가 너무 좋았다. 직원에게 세 글자 이름이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비로소 자신이 한국어 학원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 45분 수업과 선생님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한 학기만 더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이 작은 결심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그때 알 수 없었다.
3개월 뒤 강연자는 시험에서 1등을 거뒀다. 한국어학당의 최미희 원장님이 다음 학기 학비를 면제해 주고, 추가로 150달러의 장학금을 주었다. 이 금액은 그의 어머니가 한 달에 버는 월급과 같은 규모였다. 강연자는 이 성공으로 매우 신이 났다. 이것이 한국에서의 첫 성공 경험이자, 자신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 순간이었다.
다음 학기에도 강연자는 1등을 했고 추가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대학 공부보다 한국어 공부가 더 재미있었다고 회상한다. 처음엔 학원의 성공을 따라가려던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 진정한 열정으로 변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강연자는 취업에 실패했다. 그때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흐로르존, 취업 아직 안 됐으면 와서 나랑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강연자는 어학당의 매니저가 되어 일을 시작했다. 원장님의 추천으로 대한민국 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문을 열어주는 순간이었다.
건국대에서 항공우주학 석사를 받은 강연자는 연구소나 항공사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조금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취업이 안 되자 타지키스탄 대사관에서 2년간 일하게 됐다. 편하고 좋은 일이었지만, 강연자는 한국 회사의 조직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300명 규모의 물류회사 매니저로 이직했다.
대사관에서 일할 때 월급을 달러 현금으로 받았다. 이 때문에 세금 신고가 불가능했고, 소득이 없는 사람으로 기록됐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 연장이 안 된다며 당장 나가라는 통지를 보냈다. 출국 통지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강연자에게 불법으로 체류하라고 제안했다. '돈도 현금으로 주겠다'며 불법 체류를 종용한 것이다. 강연자는 정직함을 선택해야 할 십자로에 서게 됐다.
강연자는 회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정직하게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를 나왔고, 아르바이트와 육체 노동을 하며 살아갔다. 매우 힘든 시간이었고, 그 와중에 첫째 딸도 태어났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강연자는 한국에, 아내는 타지키스탄에 있었다. 만날 수가 없었고,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다. 모든 데이트가 영상통화로 이루어졌다. 매일매일 통화하며 관계를 이어갔고, 그러다 결혼을 약속했다. 혼인신고도 먼저 진행했다.
2년 뒤 아내도 한국어능력시험 3급을 취득했다. 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강연자와 같은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산부인과에서 석사까지 수료했다. 현재 아내는 인터넷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강연자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고 있다. 단칸방 원룸에서 시작한 두 사람이 함께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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