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이유 강요하는 철학적 사고의 함정
Jump to 0:07충코는 우리가 '이유'라는 개념을 학문적, 철학적 맥락에서 사용할 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지르면 안 되는 이유를 주관적인 감정에 기초해 설명하면 부적절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든 것에 이성적인 근거를 요구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성적 사고와 정답 찾기 강박에서 벗어나, 사랑과 같은 근원적 감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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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코는 우리가 '이유'라는 개념을 학문적, 철학적 맥락에서 사용할 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지르면 안 되는 이유를 주관적인 감정에 기초해 설명하면 부적절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든 것에 이성적인 근거를 요구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충코는 지난 영상에서 '요즘 사회에서 감정이 이성보다 더 존중되는 것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이는 감정이 이성보다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감정과 이성 모두 중요하지만, 이성이 중요시돼야 할 영역에서 감정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이 위험하다는 뜻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시청자가 '결국 이성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으며, 이는 그의 의도와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약 15년간 철학을 공부해 오면서 이성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느껴왔다고 고백했다. 철학 공부의 과정 자체가 이성이 어디까지나 한계가 짙은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석사 과정 자기소개서에 이성의 한계를 절감했고, 이성의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는 감정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지원했다고 기술했다.
충코의 석사 논문 주제는 '하이데거와 본래적인 사랑의 이해 가능성'이었다. 그는 이 논문을 쓰면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를 대중서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그의 철학적 생각을 담고 있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 데서 출발했던 그의 철학적 여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결과물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삶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고 밝혔다. '그냥 이렇게 죽어 버려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고, 이 고통스러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혼자 생각하기보다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논변을 제시해온 철학자들의 견해를 공부하면 삶의 더 나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진학한 후 그는 삶의 이유를 계속 공부해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고등학생 때 느꼈던 삶의 이유에 대한 강박이 사실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삶의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으며, 애초에 삶의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선입견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충코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이성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습득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성의 특징은 보편적인 틀에 개별적인 것을 끼워 맞추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기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이것은 나무야'라고 가르쳐줄 때, 아기는 저것이 '나무'라는 보편적인 개념의 틀을 통해 포섭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 과정은 언어와 개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이성적 능력은 고차원적인 사고에 필수적이다. 언어적 개념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각각의 나무들을 모두 따로따로 생각하거나 있는 그대로 감각할 수밖에 없다면, 나무에 대한 과학적 또는 합리적인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무'로 묶일 수 있는 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얻게 된다.
학교 교육은 이러한 이성 습득 과정을 더욱 강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법칙을 익히는 과정이다. 어린아이들이 받아쓰기에서 '틀렸다'고 처벌받는 것은 보편적으로 따라야 할 규칙이 있고, 개별적인 행동이 그 규칙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는 인간이 문명 안에서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교육이라고 충코는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보편적인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학습 과정이 점차 개별적인 것 그 자체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개별적인 것을 그 자체로 놔두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충코는 지적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자신이 느꼈던 감각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당시 공부의 핵심이 '정답 찾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왜 살지?', '나의 삶은 도대체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보편적인 정답 같은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자신이 실패한 학생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시험 문제에서 정답을 찾지 못한 것처럼,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설명을 제시할 수 없으면 자신이 문제 상태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삶에 대한 강박적인 태도로 이어졌다.
대학교에서 다양한 철학 이론들을 공부하면서 그는 점차 현실 세계 안에서 그 이론들의 무력한 면모들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성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것이 꼭 이성적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설명될 수도 없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철학적 관점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충코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삶의 이유에 대한 집착이 '이성의 선입견'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즉, 이성이 가장 우월한 것이고,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가치의 문제는 이성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강한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선입견이 유일하게 가능한 삶의 태도도 아니고, 인간의 삶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 그는 질문의 각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나는 왜 살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라는 질문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살지? 이성적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유가 뭐지? 고등학생 시절 그렇게까지 삶에 깊은 의문을 품었으면서도 결국 죽지 않고 계속 산 이유가 뭐지?'라는 질문을 더 많이 던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충코는 자신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특히 할머니의 존재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주셨지만, 자신보다 약하고 불편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할머니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가능한 한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 안에서의 감정 자체가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할머니를 보살피려면 자신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충코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잘해줘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는 그 이유보다 이미 사랑의 마음이 훨씬 더 강력하다고 주장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강력한 동기이며, 이성적인 설명이나 정당화 이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적 근거를 따져 묻는 방식으로는 사랑의 본질적인 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적인 이유가 인간 존재의 더 근원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다고 지적했다. 증명된 적도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그래도 이유가 존재해야 하고,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선입견에 기초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고 충코는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삶의 근원을 이성적 합리성에서만 찾으려는 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충코는 윤리학자들 중에는 도덕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정당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프랭크포트에 따르면 필립파이 같은 철학자는 부모의 자식 사랑 같은 주관적 감정으로 도덕을 설명할 수 없으며, 도덕은 이성적 정당화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랭크포트는 '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이성적 정당화가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나치 학살이 잘못된 이유를 생명 존엄성 훼손으로 설명해도, '생명 존엄성 훼손이 왜 나쁜가?'와 같은 질문은 원칙적으로 무한히 제기될 수 있으며, 결국 도덕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기초하는지 답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충코와 프랭크포트는 공통적으로 우리 자신 안에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미 존재하며, 그 자체만으로 그 대상을 위하고 보호해야 할 필연성을 갖는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는 이러한 기초적인 필연성에 근거하여 더 복잡한 도덕들이 세워지는 것이지, 어떤 더 근본적인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사랑은 이성적 분석이 불필요한 근원적인 도덕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충코는 삶의 이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우리는 삶의 이유에 대해 알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더 나아가 그는 삶의 이유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는 많으며, 그러한 중요한 것들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지나친 이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삶을 더 잘 살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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