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 체포 직전, 친일파 배정자가 은신했던 창신동 안양암
Jump to 0:51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기 직전 친일파 배정자가 마지막으로 숨어 있던 곳 중 하나가 성북동과 창신동 일대이며, 그중 하나가 창신동 안양암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안양암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얽힌 장소로 평가됩니다. 특히, 이태준이 승려로 활동했던 곳으로도 전해져 역사적 배경이 깊습니다.
친일파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삼화부인회' 기념비가 창신동 안양암에 방치돼 역사를 기록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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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기 직전 친일파 배정자가 마지막으로 숨어 있던 곳 중 하나가 성북동과 창신동 일대이며, 그중 하나가 창신동 안양암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안양암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얽힌 장소로 평가됩니다. 특히, 이태준이 승려로 활동했던 곳으로도 전해져 역사적 배경이 깊습니다.
안양암은 단순히 배정자의 은신처를 넘어, 그녀의 친일 행적에 적극적으로 이용된 장소로 밝혀졌습니다. 배정자는 이곳에서 일본 위안부 및 정신대 모집 활동을 벌였으며, 그 접수처로 활용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인 박영철의 금부 모우기 활동의 접수 현장으로도 쓰였고, 창씨개명 접수도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창신동 안양암에서는 친일파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삼화부인회 기념비'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석은 약 80년 전인 19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삼화부인회는 중일 전쟁 이후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모든 수탈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협력했던 친일파들의 모임으로, 이 비석은 그들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배정자의 본명은 배옥남이었지만, '정자'라는 이름은 특별한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이토 히로부미가 배정자를 총애하기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딸 '사다코(정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것입니다. 한자로 '고들 정(貞)'에 '아들 자(子)'를 쓰는 이 이름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가 배정자를 얼마나 깊이 총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배정자의 친일 행적과 더불어 그녀의 복잡한 개인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안양암에서 발견된 삼화부인회 기념비가 쓰러진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현장 기록물로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평가됩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비석을 다시 세워 역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그것 또한 우리 역사의 일부이므로 정확히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록물들은 미래 세대가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역사의식을 함양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됩니다. 따라서 이 비석을 단순히 방치하기보다는, 역사 교육과 보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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