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질문 대신 쪽지로만 질의 응답 진행
Jump to 2:22포럼 진행을 맡은 한민호 씨는 질의 응답 시간을 개별 질문 대신 쪽지로만 받겠다고 공지했습니다. 그는 개별 질문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충분한 토론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참석자들에게는 책 맨 뒷장에 있는 메모지에 소속, 성함, 질의 내용을 적어 쉬는 시간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를 통해 짧은 시간에 효율적인 토론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포럼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연구와 토론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유공자 명단과 업적 공개를 요구하며 자유민주적 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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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진행을 맡은 한민호 씨는 질의 응답 시간을 개별 질문 대신 쪽지로만 받겠다고 공지했습니다. 그는 개별 질문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충분한 토론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참석자들에게는 책 맨 뒷장에 있는 메모지에 소속, 성함, 질의 내용을 적어 쉬는 시간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를 통해 짧은 시간에 효율적인 토론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새역사 국민운동은 이번 포럼의 목적이 5.18이 광주만의 사건이 아니라 온 국민의 5.18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바탕 위에서 5.18이 전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민호 씨는 5.18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역사의 진실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5.18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적 자산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포럼을 통해 기존의 일방적인 5.18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논의를 촉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논의 과정을 거쳐 5.18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진숙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6년이 지났지만, 그 의미에 대해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5.18이 성역으로 규정되면 자유가 구속되고, 금기가 많아져 신화로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의원은 5.18이 대한민국의 현대사이며, 목격자들이 생존해 있고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지금이야말로 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역사적 사건이 성역으로 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문하며, 열린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진숙 의원은 5.18 유공자 명단과 관련하여 국민적 알 권리를 강조하며, 유공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5.18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국민적 이해와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유공자 선정 기준과 그들이 기여한 바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통해 5.18의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의원은 유공자 명단 공개가 특정 개인의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라고 강조했습니다.
발제자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유민주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 문헌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46년간 5.18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특정 정치적 관점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자유우파적 해석은 매우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5.18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방해하고, 다양한 관점의 논의를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발제자는 5.18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특히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입각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발제자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법적으로 정해진 5.18 민주화운동으로서 이를 전제하고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자유 민주주의와 인민 민주주의 등 다양한 관점을 학술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발제자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역사적 특성을 분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법적,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발제자는 광주에서 열흘간의 시위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부대가 주도한 도시 게릴라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건은 그전에도 사복 사태, 부마 항쟁, 4.19 혁명 등에서 유사하게 발생했던 내재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군 개입설을 배격하며, 이는 광주 시민들이 주도한 사건이고 우리 모두의 역사이므로, 우리 모두가 책임을 지고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특정 세력의 개입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며, 광주 시민의 주체적인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주대환 씨는 5.18이 헌법 전문에 새겨진다면 부마 민주항쟁도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5.18이 부마 항쟁보다 100배, 6.25 한국 전쟁보다 만 배쯤 큰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비유했습니다. 그는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한국 전쟁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주장을 하지 않았던 점을 언급하며, 헌법 전문에 특정 사건을 포함시키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주대환 씨는 헌법 전문이 담는 가치의 보편성과 상징성에 대한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주대환 씨는 현재 우리나라 헌법 전문이 재헌법 당시의 전문으로 돌아가야 하며, 한 자도 고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헌법 전문이 '우리 대한 국민'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며, 이는 만민공동회 세대의 언어 감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대한 국민의 후손이며, 주어는 그대로 두고 불필요한 말들을 집어넣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주대환 씨는 헌법 전문이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건국의 정신과 이 나라가 지향하는 꿈과 가치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 위대한 약속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무식하고 건망증인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헌법 전문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광주 시가 정율성 공원을 조성하는 것에 대한 논란을 언급했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났으나 중국 국적을 가진 정율성이 중국 공산당 팔로군 군가를 짓고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광주 시장이 '광주 정신에 입각해서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발언한 것을 언급하며, 그 '광주 정신'의 역사적 실체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이러한 논란이 광주 정신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심층적으로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주 언급했던 '민중'이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여러 학술대회에 참여하면서도 '민중'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합의된 정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명확한 정의 없이 사용되는 용어가 혼란을 야기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포럼 진행 중 행사 방해가 발생하자, 한민호 씨는 앞으로도 계속 행사 진행을 방해할 경우 법률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업무 방해죄로 고발할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는 포럼의 원활한 진행을 확보하고, 자유로운 학술 토론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그는 민주적 절차와 질서 속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불법적인 방해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 근세 현대사의 민중 항쟁을 임진왜란, 동학 농민 전쟁을 거쳐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나아가 통일 한마당으로 연결되는 흐름으로 최초 주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서술을 바탕으로 광주에 석조 부조물이 새겨지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역사관이 한국 현대사를 특정 이념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이 5.18의 의미를 확장하고 동시에 특정 정치적 서사에 편입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친일적 본성으로 인해 우리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켰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이 아니었으며,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된 적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러한 비판이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폄하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당시 경제 상황과 정책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촉구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과거 '한국은 자유도 빵도 없는데 북한은 자유는 없지만 빵은 보장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이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남한과 북한의 체제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이 사실과 다르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발언이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역사적 맥락과 실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한국의 경제 성장이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세계 정세를 읽고 미래를 그리며 이뤄낸 작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대다수 국민은 그것이 옳은 길인 줄 알고 열심히 참여하여 자기 가족과 친족, 마을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발전시키는 데 혼신을 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국민의 참여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엘리트들의 비전을 따라 동참한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이러한 해석을 통해 경제 성장의 주체와 과정을 재조명하고, 엘리트의 역할과 국민의 노력을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전두환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혼란을 수습했으며, 엄혹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 자유화, 연좌제 폐지, 통행금지 해체 등을 단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985년 학문의 자유화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1987년 여야 대타협을 통해 제6공화국이 발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이 6년 단임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전두환 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전두환 정부가 단순히 탄압의 시대가 아니라, 자유 확대와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측면도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 시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책임져야 할 역사적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고도 성장이 이루어지는 한편, 이를 저주하고 비판하는 시가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에게 가르쳐지는 모순된 상황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5.18이 특정 지역의 사건으로만 국한될 수 없으며, 모든 국민이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영훈 씨는 5.18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전국민적 차원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5.18이 대한민국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용삼 씨는 5.18 민주화운동 초기 진압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규하 대통령이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엉뚱한 해석을 낳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정부 합동조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초동 진압 작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인물들을 처벌했더라면 모든 문제가 그들의 책임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책임 문제가 파편처럼 튀어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가되고, 그로 인해 잘못된 해석이 대한민국을 휘어잡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용삼 씨는 최규하 대통령의 처벌 불이행이 5.18에 대한 오랜 논란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 규명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당시 지도부의 결정이 사태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용삼 씨는 정웅 사단장이 공수부대에게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원천 봉쇄 후 끝까지 추적해서 전원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공수부대는 본래 대민 진압 작전에 적합하지 않은 특수 부대인데, 이러한 명령이 내려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명령대로 진압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와의 충돌이 계속 악화되었고, 악성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다는 것이 정부 합동 조사 보고서에 나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용삼 씨는 정웅 사단장의 명령이 공수부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김용삼 씨는 5월 18일 새벽, 진종채 2군사령관이 예하 부대에 무기고 안전 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정웅 3사단장은 직속상관인 윤흥정 사령관에게 무기고 접근자 발포 허가를 요청했고, 윤 사령관은 지휘관 재량으로 발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김용삼 씨는 정웅 사단장이 발포 승인권을 받고도 무기고 안전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아 무기고가 습격당하고 무기를 시민들에게 뺏겼다는 내용이 정부 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무기 탈취라는 심각한 상황의 원인이 지휘관의 책임 소홀에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김용삼 씨는 5월 20일 밤, 계엄사령관이 공수부대 철수를 건의했고 윤흥정 계엄사령관이 이를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휘관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윤흥정 사령관이 공수여단 대대장들에게 계속 도청을 사수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5월 21일 집단 발포 상황이 발생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용삼 씨는 만약 윤흥정 사령관이 5월 20일 밤에 공수부대를 철수시켰다면 광주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휘관의 판단과 조치가 사태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역설했습니다.
김용삼 씨는 이광로 장군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5.18 당시 경찰 지휘관들의 도피와 무기 유기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그는 정교사령관 윤흥정, 31사단 정웅, 독경국장 안병하 등의 목포 서장들이 섬으로 도피했으며, 독경 작전과장은 경찰 작전 실패를, 나주 서장, 여감 서장, 화순 서장은 도피 및 무기 피탈을 겪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도경과장과 도경 장비장은 경찰 무기 매몰 은닉을 지시했고, 화순 경무과장은 초병 도피를 지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용삼 씨는 경찰서장들이 목숨 걸고 시위 진압을 하지 않고 다 도망가 버린 결과, 모든 책임이 현장 상황을 모르는 공수부대에 떠넘겨지면서 비극이 터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광주 사태가 악화된 진짜 이유라고 역설하며, 경찰 지휘부의 무책임한 행동이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습니다.
주동식 씨는 호남 주사파 동맹이 정치 권력 장악을 1차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탄탄한 이익 공동체를 구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들이 대선과 총선 등 전국적인 규모의 선거에서 호남과 주사파 동맹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호남이 김대중을 통해 한풀이를 한 뒤, 문재인, 이재명, 노무현 등 영남 좌파 출신을 '양자'로 맞아 대권을 장악하고 그 과실을 나눠 먹는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동식 씨는 이러한 구조가 현재 대한민국 정치 상황의 결과이며, 이는 특정 지역과 이념 세력 간의 이합집산으로 인해 형성된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동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특정 이념을 도구화하며,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주동식 씨는 이러한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동식 씨는 5.18이 '피해자 서사의 강화'와 '대한민국 가해자화'를 위한 상징 자산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좌파 세력이 5.18을 방어하기 위해 우군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세월호, 페미니즘, 노동계, 환경운동, 문화계 등 다양한 피해자 그룹을 끌어들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5.18이 '대한민국이 나쁜 놈들'이라는 서사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주동식 씨는 주사파의 의도가 개입되어 여순 사건, 제주 4.3, 동학 등의 재평가를 통해 역사 뒤집기를 시도하며, 그 최고적인 메시지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서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시도가 국민적 정체성을 흔들고 국가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주동식 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5.18 유공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황교안 전 대표로부터 5.18 유공자 합의 당시 정신적 보상은 추가로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정신적 보상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돈을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동식 씨는 이러한 방식으로 추가 보상될 돈이 1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5.18 유공자 선정 및 보상 과정의 투명성과 형평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5.18 관련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국민적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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