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서비스만 사들이는 벤딩스푼스, 기업 가치 41조 원 달성
Jump to 0:26벤딩스푼스는 에버노트, AOL, 비메오처럼 한때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를 대표했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는 서비스들을 꾸준히 사들인다. 이렇게 낡은 서비스들만 인수하는 사업 모델로 지난 7월 나스닥에 상장했으며, 현재 약 41조 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했다. '디지털 고물상' 또는 '소프트웨어의 무덤만 뒤지는 회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성장 정체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과 가격 인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벤딩스푼스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성 도전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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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딩스푼스는 에버노트, AOL, 비메오처럼 한때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를 대표했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는 서비스들을 꾸준히 사들인다. 이렇게 낡은 서비스들만 인수하는 사업 모델로 지난 7월 나스닥에 상장했으며, 현재 약 41조 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했다. '디지털 고물상' 또는 '소프트웨어의 무덤만 뒤지는 회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21년 12월, 기업용 소프트웨어 에어테이블의 기업 가치는 117억 달러(약 16조 7,8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5년 뒤인 올해 8월, 에어테이블은 12억 8,500만 달러(약 1조 8,400억 원)에 팔리며 최고점 대비 기업 가치가 81% 급락했다. 이러한 몸값 급락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 환경 변화에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원격 근무 확대로 소프트웨어 기업의 몸값이 치솟았지만, 이후 고성장에 대한 기대가 식었기 때문이다. 또한 에어테이블의 강점이었던 노코드 방식은 AI 코딩 툴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에어테이블을 인수한 회사는 경쟁 소프트웨어 기업이나 유명 펀드가 아닌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벤딩스푼스다. 벤딩스푼스라는 회사 이름은 낯설지만, 이 회사가 보유한 서비스들은 익숙하다. 메모 앱 에버노트, 동영상 플랫폼 비메오, 대용량 파일 전송 서비스 위트랜스퍼, 모임 플랫폼 미트업, 행사 티켓 플랫폼 이벤트브라이트, 그리고 한때 인터넷 시대를 상징했던 AOL까지 모두 벤딩스푼스가 인수한 기업들이다. 이 서비스들은 한때 유명했지만 전성기가 지나 성장세가 둔화됐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벤딩스푼스는 이러한 회사들을 의도적으로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벤딩스푼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루카 페라리는 원래 기술 창업자였다. 그의 첫 번째 창업 아이템은 스마트폰 사진과 기록을 분석해 자동으로 일기를 써 주는 '에버테일' 앱이었다. 이 앱은 투자를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용자를 모으는 데 실패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고객 확보가 얼마나 불확실한 일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두 번째 창업에서는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고객을 기다리는 대신 이미 고객을 확보한 서비스를 인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벤딩스푼스는 2013년 첫 창업을 정리하고 남은 약 4만 달러로 설립되었다. 첫 인수는 2014년 아이폰 키보드 꾸미기 앱으로, 인수 가격은 1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인수 규모는 점차 커져 소비자용 앱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인 에어테이블까지 확장되었다. 벤딩스푼스의 돈 버는 공식은 단순하다. 성장세가 둔화된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인수한 후, 조직과 제품, 기술, 가격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수익성을 끌어올린다. 이렇게 수익성을 개선한 서비스를 되팔지 않고 장기간 보유하며, 여기서 발생한 현금과 추가 대출을 이용해 다음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벤딩스푼스가 인수하는 기업은 완전히 망한 앱이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회사는 서비스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고객이 남아 있는 곳이다. 즉, 브랜드가 잘 구축되어 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사용자가 있으며, 구독료나 수수료처럼 반복적인 현금 매출이 있는 회사여야 한다. 특히 조직이 비대하거나 기술이 낡아 운영비를 절감할 여지가 있다면 더 좋은 인수 대상이 된다.
벤딩스푼스의 인수 기준은 공개된 숫자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에버노트는 인수 당시 약 1억 달러의 반복 매출과 수백만 명 규모의 유료 고객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메오는 인수 직전인 2024년 기준 128만 개의 유료 구독을 보유했으며 연 매출 4억 1,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벤트브라이트 역시 티켓 판매 수수료로 2025년 약 2억 9,200만 달러의 연 매출을 기록했다. 에어테이블도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다. 2021년 대비 몸값은 하락했지만, 50만 개가 넘는 조직이 여전히 에어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으며 포춘 선정 미국 100대 기업 중 80%가 고객이다. 연간 반복 매출은 약 4억 8천만 달러(약 6,86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벤딩스푼스가 성장 기대가 무너져 가격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고객과 매출이 탄탄한 회사를 인수하는 전략임을 보여준다.
벤딩스푼스는 인수한 기업을 기존 경영진에게 그대로 맡겨 두지 않는다. 인수 직후에는 조직을 축소하고, 오래된 서버와 소프트웨어 구조를 개선한다. 또한 이용자 화면과 주요 기능도 다시 설계하는 등 공격적인 재편 작업을 진행한다.
벤딩스푼스는 여러 회사를 인수하지만, 각 회사를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서로 다른 서비스들을 하나의 거대한 운영 체제 위에 통합한다. 이러한 방식은 한 서비스에서 개발된 기능과 기술을 다른 서비스에서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벤딩스푼스는 에버노트를 인수한 후 대부분의 인력을 감축했다. 동시에 앱의 속도와 안정성을 개선하고 제품 업데이트를 늘렸다. 특히 AI를 활용하여 고객 지원 문의를 자동 분석함으로써 오류 개선 속도를 높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매출 대비 IT 인프라 비용은 2022년 대비 2025년 47% 감소했다.
운영 효율화와 비용 절감과 함께 벤딩스푼스는 고객들에게 청구하는 가격을 크게 인상했다. 미국 기준으로 인수 전 69.99달러이던 연간 개인 요금제는 2023년 129.99달러까지 올랐다. 또한 2026년에는 요금제를 개편하여 최대 249.99달러 상품까지 출시했다. 이는 무료 사용자의 제한을 강화하여 유료 전환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가격 인상과 정책 변경으로 사용자들의 불만은 높아졌다. 하지만 2025년 신규 유료 구독의 51%는 사용 한도에 도달한 기존 고객에서 발생했다. 이용자 한 명당 평균 매출도 2022년 대비 2025년에 2.5배 증가했다. 이는 10년 넘게 수천 개의 노트를 쌓아온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결국 에버노트를 떠날 수 없었던 결과로 해석된다.
벤딩스푼스는 기존 인력을 '무자비하다' 할 정도로 감축한 뒤 대대적인 가격 인상을 포함한 개편을 단행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50건이 넘는 인수를 통해 수십 개 회사를 거느린 기술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회사 매출은 2023년 3억 8,700만 달러에서 2025년 13억 1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벤딩스푼스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026년 1분기 구독 매출의 48%는 가입한 지 5년 넘은 고객에게서 발생했으며, 평균 고객 유지 기간은 약 8년에 달했다. 영업 활동 현금 흐름은 증가하고 2025년 매출이 전년 대비 95% 증가했지만, 인수 효과를 제외한 유기적 성장률은 13%에 불과했다. 이는 성장의 상당 부분이 신규 인수 효과에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높은 부채 또한 벤딩스푼스의 부담 요소다. 2025년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은 2억 9,100만 달러였지만, 기업 인수 등에 사용한 돈은 18억 5,200만 달러에 달했다. 부족한 자금은 대부분 대출과 투자금으로 충당되었다. 2026년 3월 말 기준 벤딩스푼스의 총 부채는 약 43억 6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현재와 같이 빠른 속도로 기업을 인수하려면 계속해서 돈을 빌리거나 새 주식을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에어테이블 인수는 벤딩스푼스에게 최고의 인수 대상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험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어테이블은 단순히 전성기가 지난 소비자 앱이 아니다. 여전히 반복 매출이 20% 넘게 성장하고 있으며, 수많은 기업의 데이터와 핵심 업무를 관리하는 서비스다. 기업 고객은 메모 앱 이용자보다 가격에 덜 민감할 수 있지만, 보안과 서비스 안정성, 그리고 고객 지원에는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벤딩스푼스의 전략이 기업용 소프트웨어에도 통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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