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신교 중 하나, 조로아스터교
최후의 심판, 인간 마음을 현혹하는 악마, 세상 끝에 나타나는 구원자 등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알려진 개념들은 사실 기독교 탄생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러한 관념들의 뿌리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있으며, 이 종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신교 중 하나로 꼽힌다.
한때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는 현재 전 세계 신자 수가 수만 명에 불과해 소멸 위기에 처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세계 주요 종교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소멸 위기에 처한 조로아스터교의 역사와 교리, 그리고 현대적 의미를 조명한다.
최후의 심판, 인간 마음을 현혹하는 악마, 세상 끝에 나타나는 구원자 등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알려진 개념들은 사실 기독교 탄생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러한 관념들의 뿌리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있으며, 이 종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신교 중 하나로 꼽힌다.
한때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는 현재 전 세계 신자 수가 수만 명에 불과해 소멸 위기에 처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자라투스트라의 정확한 탄생 시기는 불분명하여, 기원전 1200년 무렵설과 기원전 6세기경설이 약 600년의 차이를 두고 존재한다. 그는 사제 가문 출신으로, 수많은 신을 섬기던 시대에 어린 시절부터 다신교적 전통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영적 탐구를 통해 새로운 종교적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1200년 무렵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가 있는가 하면 기원전 6세기경이라는 설도 있어 그 차이는 무려 600년 이상이나 됩니다.
자라투스트라는 30세 무렵 강가에서 빛의 존재를 만나 지혜로운 주님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그는 셀 수 없는 신들이 아닌 오직 하나의 선한 신을 믿고, 재물이나 주술 대신 올바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라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기 포교 활동은 실패했지만, 이후 비슈타스파 왕이 개종하면서 조로아스터교는 점차 정착하게 되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세상에 두 가지 거대한 힘이 충돌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가 이끄는 선의 힘이며, 다른 하나는 이에 적대하는 악의 힘으로, 우두머리는 안그라마인유(아리만)다. 자라투스트라는 세계가 이 선과 악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거대한 전장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며, 매일의 성실한 삶은 선의 승리를 돕는 전사의 행위로 여겨졌다.
사람은 죽은 뒤 생전의 행위를 모두 심판받는다. 좋은 행위가 많았던 사람은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향하며, 먼 미래 세상의 끝에는 '사오슈안트'라는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이때 모든 죽은 자가 부활하며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고, 악은 멸망한다. 이러한 개념은 유대교와 기독교 교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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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신전에서 끊이지 않고 타오르는 불을 향해 기도했다. 불은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의 올바름과 청결함을 상징하는 징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 그 자체를 신으로 숭배한 것은 아니며, 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느끼기 위한 깨끗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세계 제국인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기틀을 닦은 인물은 키루스 2세다. 키루스는 정복한 민족의 종교나 관습을 존중하는 관용적인 통치를 펼쳤다.
이러한 관용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바빌론 유수 당시 고향을 빼앗기고 포로 신세가 되었던 유대인들이 있었고, 키루스 2세는 그들을 해방해 주었다.
키루스 2세의 유대인 해방과 신전 재건 허용과 같은 관대한 행동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다리우스 1세의 베히스툰 비문에는 '아후라 마즈다의 은총에 의해 내가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아케메네스 왕조가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사산 왕조의 초대 국왕인 아르다시르 1세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정했다. 이로써 종교와 국가가 단단히 결합하며 조로아스터교는 제국의 척추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국가 체제와 종교가 결합하면서 왕권과 사제의 권력이 강화되었고, 사회 계층은 세 개의 성스러운 불과 연결되며 그 의미를 부여받았다.
사산 왕조 시기, 그때까지 주로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던 조로아스터교의 가르침은 비로소 경전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 경전이 바로 '아베스타'다.
아베스타는 수집 및 완성 과정을 거쳐 6세기경 현재의 형태로 정비되며 조로아스터교 신앙 체계를 공고히 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부활 사상은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또한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 개념의 형성에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있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불리는 세계 3대 일신교의 뿌리 부분에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이 조용히 흘러들어와 그 사상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여겨진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쪽 나라에서 세 명의 현자가 먼 길을 왔다는 기독교 전설이 있다. 이 '동방 박사(Magi)'의 정체가 사실은 조로아스터교 사제였을 것이라는 설이 매우 유력하다.
'마기'라는 단어의 어원이 고대 페르시아어로 사제를 의미하는 것과, 별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 이러한 설을 뒷받침한다.
이슬람교의 확장으로 인한 개종 압박을 피하고자 많은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긴 항해 끝에 인도의 서쪽 해안으로 이주했다. 8세기에서 10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이주한 이들은 '파르시'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인도 왕에게 자신들을 '우유에 녹아든 설탕처럼 당신들의 삶에 스며들어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비유하며 정착을 허락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조로아스터교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시신을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지 않는 독특한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신 '침묵의 탑'이라고 불리는 원형 시설 위에 시신을 두고 독수리 같은 새들이 쪼아먹게 하는 조장(鳥葬) 방식을 택한다.
이는 깨끗한 존재인 대지와 불을 시신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종교 철학을 담고 있다.
현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은 전 세계를 다 합쳐도 1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엄격한 폐쇄성으로 신앙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 대표 기업인 타타 그룹 창업주 일가, 전설적인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등이 파르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어 소수 종교로서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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