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기록과 최만리의 반대 상소로 본 세종의 단독 창제
1443년 세종실록에는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세종대왕의 단독 창제설에 힘을 싣는다.
최만리의 훈민정음 창제 반대 상소는 세종의 창제 후 두 달 뒤에 발생했으며, 세종은 상소에 직접 답하며 운서와 자모를 언급하여 자신의 학문적 우위를 드러냈다.
영화 등에서 제기된 신미대사 창제설은 '원각선종석보'라는 위서에 기반한 허위 사실로 밝혀졌다.
불교계와 일부 학자의 산스크리트 기원설 역시 학계에서는 부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