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고종 황제 변사, 새벽 식혜 한 잔이 부른 의문사
원본 영상 0:001919년 1월 21일 새벽 6시, 고종 황제가 식혜를 마시고 쓰러진 뒤 변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10시경까지의 상황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당시 고종의 죽음은 의문사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사안으로 지목된다.
고종 황제 사망 당시 검시를 맡았던 안상호가 변사체에서 독살 흔적이 뚜렷했음에도 '타살 혐의 없음'으로 기록한 사실이 드러나며 3·1 운동 촉발 배경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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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 21일 새벽 6시, 고종 황제가 식혜를 마시고 쓰러진 뒤 변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10시경까지의 상황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당시 고종의 죽음은 의문사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사안으로 지목된다.
고종의 시신을 검시한 결과, 혀와 목구멍이 전부 새카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식도와 위까지 새카맣게 타서 줄이 그어져 있었으며, 온몸이 뚱뚱 부어 용포 자락이 굉장히 커져서 검시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전날까지 건강했던 고종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맞물려 독살 의혹을 키웠다.
고종의 검시를 맡았던 인물은 안상호였다. 그는 고종의 시신에서 독살로 보이는 심각한 손상들을 확인하고도 검시 기록에 '타살 혐의 없음'이라고 기재했다.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제국 백성들은 그의 기록을 믿지 않았으며, 이는 3·1 운동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다.
고종에게 식혜를 수발 들었던 19살, 21살의 궁녀 두 명이 고종 사망 사흘 만에 모두 죽었다. 이는 증거인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독이 매우 강했음을 시사한다. 이 사건은 고종 독살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고종의 독살설은 온 백성 사이에 빠르게 퍼져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식혜를 갖다 주라고 지시했던 인물로 민영희와 이완용이 지목되었다. 백성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이 고종 황제를 독살했다고 분노했다. 검시의 안상호가 이완용을 살리고 조선총독부 대장의 딸과 결혼한 인물로 알려지며, 그가 고종 검시에 참여한 사실은 국민의 공분을 더욱 샀다.
원래 1919년 3월 3일로 예정되었던 고종 황제의 인산일은 독살설에 대한 분노로 인해 3월 1일에 전 국민이 거사로 일어나는 3·1 운동으로 번졌다. 당시 검시 기록은 변사 보고서에 사체 상태와 함께 '타살 혐의가 있음/없음'을 체크하게 되어 있었다. 안상호는 독살 혐의가 있는 사체 상태를 그대로 기록했지만, 최종적으로 '타살 혐의 없음'을 선택했다.
안상호는 고종의 변사체 상태를 상세히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적인 판단에서는 '타살 혐의 없음'으로 기재했다. 이는 수사가 시작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은 당시 대한제국 국민 누구도 믿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장례 절차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아버지의 장례식 때 관을 붙들고 검시를 제대로 다시 하라며 놓지 않는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이완용에 의해 강제로 떼어졌다. 또한 덕혜옹주는 일본 황실 교육원에서 생활할 때 마호병(보온병)에 담긴 물만 마셨는데, 그 이유를 '아버지처럼 죽을까 봐 겁이 난다'고 말해 독살 의혹에 무게를 더했다.
고종의 며느리인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에서도 고종 독살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이방자 여사는 회고록에 '이완용의 지시로 안상호가 고종을 독살했다'고 명시했다. 이완용을 지시한 것은 조선총독부의 데라우치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증언들은 고종의 죽음이 단순한 병사가 아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안상호는 이완용을 살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여자와 결혼했으며, 조선총독부 대장 출신의 딸인 모리 가문의 딸과도 결혼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친일 행적과 일본과의 깊은 관계는 고종 검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다.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의 시신을 소각했던 구현수는 송병주의 사위이자 안상호와 연결된 인물로 언급된다. 구현수는 안상호의 두 번째 결혼을 일본에서 중매했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보'에 내선일체 모범 사례로 소개된 안상호 가족 기사의 사진에서는 안상호의 자녀들이 기모노를 입고 있다. 이는 안상호 가문이 친일 성향이 깊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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