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와 출연자의 오래된 인연: '반칙 방송'으로 시작
원본 영상 1:38진행을 맡은 홍성구 대표기자는 김춘곤 목사가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처음으로 모신 손님이라며, '반칙 방송'이라는 표현으로 친분을 드러내며 대담을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임을 방송 초반부터 밝히며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목회의 부침과 교통사고 후유증 극복, 과테말라 교육 선교에 헌신한 김춘곤 목사의 삶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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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을 맡은 홍성구 대표기자는 김춘곤 목사가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처음으로 모신 손님이라며, '반칙 방송'이라는 표현으로 친분을 드러내며 대담을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임을 방송 초반부터 밝히며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김춘곤 목사의 아버지는 자녀가 태어난 후 교회를 개척하는 등 신앙생활에 적극적이었으나, 돌연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는 아버지의 신앙생활 중단 시기는 기억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자신도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예수를 다시 잘 믿고 하나님 앞으로 갈 것 같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밝혔습니다. 이 유언은 아버지의 신앙생활 복귀에 대한 마지막 바람을 담고 있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김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늘 가방에 성경책을 가지고 다녔으며, 생물 시간에 진화론을 반박하며 교사와 토론을 벌일 정도로 신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주변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전거에서 내리던 중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신체 마비가 급격히 진행되어 소변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신체 마비로 고통받던 김춘곤 목사를 방문한 정체불명의 인물이 기도를 통해 그에게 ‘너는 죽지 않는다. 네가 할 일이 있고 너는 목사가 돼야 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 예언적인 메시지는 죽음의 문턱에 있던 김 목사에게 생명의 희망과 함께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마비 증상이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창문 턱을 잡고 다리를 붙들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창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밝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순간은 그에게 삶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2.5톤 음료 배달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이 사고로 혀의 3분의 2가 절단되고 골반 및 허벅지 부위가 탈구되는 등 심각한 중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한번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확인하며 그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고는 그에게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을 안겨주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홍원제일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활동하던 시절, 당시 심방 전도사였던 현재의 장모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첫 소개팅에서는 거절당했지만, 미국으로 떠났던 사모님이 다시 연락하면서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 특별한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토요일 청년부 예배 찬양 소리로 인해 인근 독서실 사장과의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깡패 생활을 했던 한 청년이 나서 독서실 사장을 데려와 30분 만에 갈등을 해결했습니다. 이후 독서실 사장이 직접 사과하며 상황이 일단락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김춘곤 목사는 전했습니다. 이 사건은 청년부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약 7년간 목회를 중단했던 기간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목회를 쉴 때 '딱 어딘가 멈춰서 한번 생각해 보는 순간이 되면 아 참 마음이 아프죠'라며 당시 겪었던 내면의 고통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 기간은 그에게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건축 사업 초기 지하 공사(베이스먼트) 인스펙션이 반복되면서 약 5만 불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계약 금액 57만 불이었던 프로젝트에서 지출이 60만 불을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그는 이 경험을 건축을 배우기 위한 '수업료'로 여기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보험료를 미납했던 김춘곤 목사는 사고 발생 후 보험 효력이 상실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고 처리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당시의 상황을 '돈도 없고 힘들으셔 가지고 보험료를 지불을 못 해서 보험이 안 돼서 보험 그 돈이 많이 나왔고 그러니까 저는 그때 돈 안 낸 걸 까먹고'라고 회상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한 동네에서 특정 가정에만 집을 지어주는 선교 방식이 주변 이웃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지원받은 가정을 '왕따'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복음 전파와 함께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선교 방향을 집 건축에서 교육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김춘곤 목사가 설립한 과테말라 한미학교(CCA)는 성경, 영어, 한글 교육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건축학과 등 실업 교육 과정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음 전파를 넘어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교육 선교의 일환입니다.
과테말라 현지의 살인 사건 등 위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춘곤 목사는 오히려 거부감 없이 '선교라는 그 자체가 이런 곳이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 지역이야말로 선교가 절실히 필요한 곳이라 인식하고 사역을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과테말라 한미학교의 졸업식과 입학식에서 현지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제창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를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복음을 받은 자.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정체성 확립과 연결 지으며, 태권도 교육을 통해 한국의 정신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태권도 수업이 현지 학생들에게 예의, 염치, 인내, 불굴의 의지 등 다양한 인성 교육적 가치를 가르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사리분별에 대해서 양심적인 또 인내하고 목표 향해 가는 거 자기 절제하는 거 뭐 또 이렇게 어떤 역경에 지지 않는 불굴의 의지 이런 것들을 함께 가르쳐요'라고 설명하며, 현지 부모들이 자녀들의 긍정적인 변화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과테말라 시장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시장이 시정을 잘 이끌도록 돕고, 스마트팜과 재활용 시스템 등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할 예정입니다. 또한 현지 쓰레기 처리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업체와의 MOU 체결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과테말라의 험준한 산악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드론 운송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업체 및 정부 지원을 통해 드론 기술 수출과 현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며, 선교 학교를 드론 기사 양성 센터로 활용할 방침입니다. 그는 이 사업이 중남미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사모를 '의자 등받이가 있으면 참 편하잖아요. 그런 존재'라고 비유하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때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순간 돌이켜보면 '아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마움과 더불어 모든 것을 다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크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김춘곤 목사는 목회 은퇴 후 과테말라에 정착하여 현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남은 삶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그는 열악한 생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생기를 느낀다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역사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그의 선교에 대한 깊은 헌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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