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초청 강연에서 김성수의 역사적 행적 재조명
조정식 국회의장 비서관 등이 배석한 가운데, 강연 내내 이탈자 없이 청중들이 집중하며 경청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강연에서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 배경을 동아일보가 지우는 데 앞장섰음을 지적하며, 김성수 일가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처럼 비치는 일반적인 인식과 실제 행적 사이의 괴리를 부각했다.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의 친일 행적과 독립운동 변절이 국회 강연에서 재조명됐다.
조정식 국회의장 비서관 등이 배석한 가운데, 강연 내내 이탈자 없이 청중들이 집중하며 경청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강연에서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 배경을 동아일보가 지우는 데 앞장섰음을 지적하며, 김성수 일가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처럼 비치는 일반적인 인식과 실제 행적 사이의 괴리를 부각했다.
동아일보가 독립운동 의거의 배경을 은폐하고 왜곡 보도에 앞장섰던 사실이 강연에서 지적됐다. 특히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와 관련하여 최초로 왜곡 보도를 수행한 언론사가 김성수의 동아일보라는 점이 강조됐다.
인촌 김성수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성장했다. 1914년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15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며 교육계에 발을 들였다.
특히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자신의 자택을 회합 장소로 제공하는 등 초기에는 독립운동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성방직은 광목 생산 등 자국 물산 장려 운동에 동참하는 광고를 게재하며 민족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는 당시 민족 자본 육성과 일제 상품 불매 운동이 활발했던 시류에 발맞춘 것이었다.
김성수는 1920년 양기탁, 유근, 장덕수 등과 함께 동아일보를 설립하며 언론계에도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후 1932년에는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인수하며 교육 기관 경영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경제계는 물론 언론과 교육 분야까지 폭넓게 장악하며 사회적 기반을 다졌음을 보여준다.
중앙고등학교 내 김기중, 김경중 동상이 존재하며, 과천 대공원 내 김성수 동상은 새똥 얼룩 등으로 관리 부실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기념물들은 김성수가 마치 독립운동을 크게 기여한 것처럼 비춰질 소지가 있어 과거사 청산 문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김성수는 3.1운동 이후 변절하며 최악의 친일파로 규정됐다. 강연에서는 김성수와 그의 동생 김연수를 최악의 친일파로 지목하며, 3.1운동을 기점으로 그들의 행보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에 주목했다.
김연수는 형 김성수의 친일적인 행동을 일관되게 비판했으며, 심지어 김연수의 어머니는 김연수에게 김성수를 멀리하도록 교육했다.
이러한 형제간의 갈등은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각기 다른 노선을 선택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생은 이미 정말 이거를 여러분께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너 알아서 해라 나는 그 독립은 그런 거 모른다 알겠나 이러고 나가버린 있습니다.
이 사설은 독립운동 노선을 포기하고 일제의 문화통치에 타협하는 친일 자치 운동론을 제시하며, 정치, 산업, 교육 세 방면의 활동 결사를 주장했다.
이는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가 조선총독부에 항복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에 이따위 인물이 지명된 것은 크나큰 치욕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이시영 부통령이 5일간 단식 투쟁까지 벌이며 김성수 임명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이를 강행하며 김성수를 부통령 자리에 앉혔다.
조선일보 내부에서는 박헌영, 조봉암, 김단야 기자 등이 송병준 사장의 친일 노선에 강력히 반발하며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이들은 할복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송병준 사장의 친일 행보를 막아섰다.
기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송병준 사장은 1925년 뇌경색에 걸려 사망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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