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기념 강연장에서 친일 비판에 딸 이정화 박사 침묵
박인영 작가는 이 사건이 이광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본다.
재미 의사 박인영 작가가 춘원 이광수에 대한 상반된 평가 속에서 그의 행적을 재조명한 신간 '외로운 영웅, 춘원 이광수'를 통해 이광수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영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인영 작가는 이 사건이 이광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본다.
당시 강연에 참석한 청중 대다수는 이광수의 행적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이광수를 무조건적인 친일파로 매도하는 시각과 이를 옹호하려는 박 작가의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이 발생하기 2개월 전, 이광수는 곧 닥쳐올 위기를 예감하며 유언적인 글을 남겼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천당도 천국도 필요 없고 오직 조선 땅에 태어나 조선을 영광된 나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밝혀,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박인영 작가는 이 글을 이광수를 애국자로 평가하는 핵심적인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다.
그는 이 책에서 대중의 인식과 실제 역사적 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광수를 향한 비난이 특정 이념과 흑백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비판한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4년 동안 국문학을 전공한 학생조차 이광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는 국문학 교육 현장의 극단적인 실태를 보여준다.
대중은 실체를 알지 못한 채 특정 부류의 선동에 넘어가 이광수를 무조건적인 악인으로 낙인찍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인식은 완전히 반이광주의로 흐르고 있다.
이광수는 어린 시절 고유 민족 종교인 동학을 접하며 민족주의에 눈을 떴다. 당시 만난 동학인들의 인품에서도 깊은 감화를 받았다.
동학에서 체득한 민족주의와 인품은 이후 그가 펼친 모든 활동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 이는 춘원의 초기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주 교포 사회 내에서도 이광수에 대한 이념적 대립과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상당수 교포들은 이광수라는 인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잘 알지 못한다.
이광수에 대해 아는 이들은 이름을 듣자마자 그를 친일 협력자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한다. 해외 동포 사회에서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공식적인 여론조사는 없으나, 심정적으로 춘원을 동정하는 여론이 실재한다는 것이 박 작가의 진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춘원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변호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하며, 박 작가는 자신의 책을 통해 춘원의 행위를 분석하고 정당화 가능성을 논하고자 한다.
181명의 수양동우회 회원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는 상황에서, 이광수는 동료들을 감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사상 전향과 일제 충성 서약을 선택했다.
이광수는 자신의 명예보다 민족과 동지 보호를 우선시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했다.
해방 직후 북한 보위부는 이광수에게 과거 행적 고백과 충성을 강요했으나, 그는 생존을 위한 변절이 아님을 피력하며 붓을 꺾고 자진 납북을 선택했다.
수양동우회 사건 당시 그는 변절이 동지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음을 역설하며, 개인의 생존을 위한 굴복은 거부했다.
그는 붓을 꺾고 자진 납북을 선택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변절과는 다른 일관된 민족의식을 보여주었다.
박 작가는 당시 한국인의 80% 이상이 창씨개명을 했다는 수치를 제시하며, 이를 근거로 한 친일파 낙인찍기는 무리한 처사라고 비판한다.
윤동주 시인을 비롯해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많은 지도자들 역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창씨개명을 피하지 못했다.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창씨개명 자체가 친일의 절대적 잣대가 될 수 없음을 뒷받침한다.
당시 이광수는 심각한 폐병으로 죽음을 고려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족 정신을 고취해야 한다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지탱했다.
김형석 교수는 춘원이 없었다면 조선 독립 자체를 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광수가 침묵하지 않고 활동했기에 청년들에게 희망이 유지될 수 있었다.
박인영 작가는 이광수에 대한 자신의 글을 잘못을 후회하고 사과하는 '변호'가 아닌, 행위를 정당화하는 '변론'으로 규정한다.
그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은 이광수를 이해한다면 최남선, 윤치호 선생 등 다른 인물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하며, 방대한 자료로 인해 이광수에 집중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인물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자 한다.
이광수를 민족 배반자로 규정하는 비난 여론과 달리, 박 작가는 역사적 진실에 비추어 이념적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그는 이광수를 자신의 일생을 바쳐 민족을 위해 희생한 영웅으로 보며, 현대사 인물 중 가장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례로 꼽았다.
진실한 면모는 자신의 일생을 바쳐 민족을 위해 희생한 영웅이며, 현대사의 인물 중 가장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례로 꼽힌다.
박인영 작가는 친일인명사전의 4,750명 선정 기준이 불명확하며, 어디까지가 친일이고 아닌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 헌법에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 때문에 벌받지 아니한다는 연좌제 금지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된 지 80년이 넘도록 친일 연좌제는 여전히 존속하며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역사적 인물 자손에 대한 사회적 격리와 박해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박인영 작가는 역사 앞에서 모든 이가 편견 없이 사실을 탐구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정한 학구적 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의 어원이 조사와 탐구의 과정임을 상기시키며 윤치호 관련 후속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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