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에서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는 FSD
신호등 앞에서 FSD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반복한다. 갑자기 속도를 낮추거나, 차량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며 길을 확보해주는 등 운전자가 상상하지 못한 움직임을 보인다. 운전자는 이런 상황에서 "차가 오르다가 갑자기 왜 서냐"며 혼란스러워한다. 정해진 경로가 아닌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경향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자율주행의 정의부터 일상화까지, 기술이 현실과 맞닿는 지점을 들여다본다.
신호등 앞에서 FSD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반복한다. 갑자기 속도를 낮추거나, 차량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며 길을 확보해주는 등 운전자가 상상하지 못한 움직임을 보인다. 운전자는 이런 상황에서 "차가 오르다가 갑자기 왜 서냐"며 혼란스러워한다. 정해진 경로가 아닌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경향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FSD의 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호등 색이 바뀔 때 정확한 타이밍에 통과하는 모습은 인간 운전자 중 상위 몇 퍼센트 수준의 기술로 평가된다.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해 최적의 타이밍에 차를 진행시키는 능력은 일반 운전자가 매일 연습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FSD의 경로 안내는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 직진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돌아가는 길로 유도하면서 운전자가 개입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 만든다. 운전자가 여러 번 반복해서 핸들을 잡고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문제는 차와 운전자 간 의사소통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차가 왜 그 경로를 선택했는지, 운전자가 왜 다른 경로를 원하는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 방식이 부재하다.
왜 이렇게 가면 되는데 왜 이걸 이쪽으로 돌리죠? 이해를 못 하겠어. 여기서 직진했으면 좋겠는데.
현재 FSD는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운전자가 반복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차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단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차와 운전자 간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 환경은 예외 상황으로 가득하다. 보행자 신호등의 모자 부분이 도로로 튀어나와 있는 경우가 있다. 대형 트럭 같은 경우 저 신호등에 걸릴 경우가 꽤 자주 있다. 그 사이 중앙 폴이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생긴다. FSD도 이런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복잡한 회피 기동을 수행해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본질적 한계가 있다. 롱테일(Long Tai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0.001%까지 개선해도 완성되지 않는 영원한 미완성을 의미한다. 제논의 역설, 즉 거북이와 토끼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미분으로 계속 줄어드나 결국 0이 되지 않는 것처럼, 자율주행도 예외 상황은 끝없이 존재한다. 테슬라의 FSD가 되더라도 그런 아주 예외적인 상황은 분명히 발생한다.
제논의 역설을 통해 자율주행의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앞에 거북이가 있고 뒤에 토끼가 있는데, 토끼가 거북이의 두 배 속도로 가도 거북이는 조금 더 가기 때문에 끝까지 토끼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수학적으로 0에 수렴하지만 0이 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자율주행도 이와 동일한 원리로 무한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율주행이 영원히 올 수 없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부터 자율주행인가'를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이라는 것은 사고율이 제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고율이 인간보다 적어지는 것이 자율주행의 정의여야 한다. 이렇게 정의를 재설정하면 완벽함을 추구하는 불가능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리 법칙상 제로 사고는 불가능하다. 자동차가 자신도 모르게 가서 사고를 내는 것을 어떻게 용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지만, 사람도 자신도 모르게 사고를 낸다. 어쩔 수 없는 접촉사고는 항상 존재하며, 이는 제로가 될 수 없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현실이다.
자율주행과 안전 기술이 실제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 한국의 연간 자동차 사망자 수는 5000명대에서 3000명대로 급감했다. 이는 여러 복합 요인의 결과다. 자동차 자체의 안전성이 향상되었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긴급제동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음주운전도 줄어들었다. 이것이 기술이 실제로 사람의 삶을 바꾼 증거다.
자율주행이라는 표현을 두고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일부에서는 로보택시처럼 완전 자동화된 차만 자율주행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의는 제조사 책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자율주행이라고 말하지 말아. 실제로 자율주행이 아닌데 자율주행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게 사고를 일으켜. 사람들이 자율주행이라고 착각하고 그걸로 사고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니까 아예 자율주행이란 말은 꺼내지도 마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신다.
자율적으로 주행을 하느냐가 자율주행의 본질이다. 실제로 집에서부터 버튼 한 번, 페달 한 번, 핸들 한 번 안 돌리고 그냥 온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이는 현대차의 HDA(Highway Driving Assist)와 레벨 2+ 기술과 비슷한 개념이다. 테슬라 FSD는 ADAS와 다르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과 비교하면 자율주행의 정의는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중국이 자율주행 표현을 금지했다는 주장에 대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규제는 용어보다는 안전 기준에 관한 것이다. 중국은 팝업식 도어 핸들도 금지되어 있다. 도어 핸들이 밖으로 노출돼 있지 않으면 그것도 금지된다. 특정 얼굴 인식 방식도 금지된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규제는 매우 광범위하며, 용어 규제만으로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율주행이라는 표현을 규제해도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면 된다. 능동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 같은 표현으로 대체 가능하다. 결국 이름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며, 그 기술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자율주행의 정의보다는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율주행이 뭐냐, 자율주행이 이거다 저거다 얘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자율주행이라는 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냐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덜 되어 있다. 현재는 자율주행이 뭐냐 자체의 용어 싸움에 집중되어 있고,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 놓쳐지고 있다.
테슬라의 자동 주차, 자율주행 같은 기술들은 처음엔 신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사실 신기한 게 한 30분이다. 1시간 지나면 그때부터 신기하지가 않아진다. 그냥 당연하게 하게 된다. 이는 스마트폰 기술과도 같다. 스마트폰도 혁신적이지만 사용 후에는 당연해진다. 이것이 기술이 삶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혁신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평가 기준이 실제 삶의 변화와 충돌한다. 일부는 자율주행이라는 것이 아직도 멀었다고 평가하고, "이건 자율주행도 아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들의 삶이 분명하게 바뀌고 있고, 기존의 자동차로는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는 그 기술이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증거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을 보여주기용 리틀 트리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제대로 된 정말 삶을 바꿔 놓는 방식이다. 일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쇼용 기술이 아니다. 테슬라의 변화가 놀랍지만, 앞으로의 변화가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는 자율주행이 단순한 마케팅 요소가 아니라 실제로 이동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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