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5천 년 역사에 녹아 있다는 통념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제사의 형태와 그 확산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 이 인식은 근거가 약하다.
송나라의 경제 발전이 주자가례를 낳았고, 조선의 지도층은 이를 국가 개혁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제사의 형태와 그 확산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 이 인식은 근거가 약하다.
송나라는 요나라·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갔으나 중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는데, 이는 강남농법으로 경제를 재편했기 때문이었다. 송나라는 요나라와 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갔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왕조가 됐다. 그 핵심은 강남농법으로, 안사의 난으로 당나라 인구 3천만 명이 사망한 후 북쪽 주민들이 양자강 남쪽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원래 야만인 거주 지역이던 그곳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왕안석의 신법으로 국가 토목사업이 추진되면서 양자강 삼각주 간척지 1천만 무가 세계 최고의 농토로 변모했다. 객토법과 인분 시용으로 1모작 체계가 2모작으로 전환되고 휴경지가 제거되면서 농업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부유해진 사회 속에서 주자가례라는 새로운 예절 체계가 만들어졌다.
경제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농사를 짓는 일이 생존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농사를 지어서 그 쌀과 곡물을 판매하면서 부농들이 생겨났다.
이제 부유한 집안에서는 자녀를 공부시켜 과거시험에 보내 출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과거시험 응시를 위해 책 수요가 증가하면서 인쇄술 발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책이 팔기 시작하면서 인쇄 속도가 빨라지고 인쇄술이 급속도로 발달했다. 돈이 많으면서 공부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 계급이 새로 생겨났는데, 이들을 사대부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계층이 송나라 강남에서 생겨났고, 주자가례라는 새로운 예절 체계는 바로 이들 사대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조선 시대 글을 쓴 사람들은 중국 강남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강남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조선의 지도층은 이 강남의 부유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원인으로 강남농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 조직, 그리고 주자학 전통을 발견하게 됐다.
고려 말 원나라 황실에서 교육받은 고려 귀족들이 귀국하면서 이색, 정몽주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했다. 이들과 그 주변인물들이 조선의 신흥 사대부 계층의 뿌리가 되었다.
이들은 원나라에서 배운 주자학적 사회 체제를 조선으로 가져왔고, 이것이 조선 초기 국가 구조의 기초를 이루게 됐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지식인들은 같은 경전을 공부하면서 정자에 모여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詞)의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공동의 문화 활동은 같은 계층 내 그루핑을 만들었고, 사대부만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다. 이들은 경전을 통해 같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공유했다.
황실을 위한 제사가 있었고 귀족들을 위한 제사가 있었고 고관들이 하는 제사들이 따로 있었지만, 신흥 사대부층을 위한 제사는 없었다. 성리학자들이 이 새로운 계층을 위해 '4대 봉사'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4대 봉사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까지 네 대를 제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왕조나 귀족과는 다른, 신흥 사대부만을 위한 독자적인 제사 체계였다.
강남의 경제 발전은 강남농법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강남의 경제를 재현하려면 농법뿐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사회 조직이 필요했다.
그 사회 조직이 성시(姓氏) 집단으로 돼 있는 집성촌이었다.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면서 넓은 농사와 수로 관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의 지도층은 강남을 보면서 이 물질적 번영 뒤에 있는 사회 구조 자체를 관찰했고, 주자학과 제사 문화가 그 사회 조직을 지탱하는 핵심 이념 체계라고 판단했다.
조선이 강남농법을 도입하면서 도입한 것은 농법뿐이 아니었다. 강남농법과 함께 주자학적인 사회 체제도 들어왔다. 주자는 《권농서》를 저술해 농법과 행정을 함께 다뤘다.
주자의 표어는 '실사구시(實事求是)'였다. 그러나 조선의 지도자들은 주자의 실사구시 정신을 버리고 껍데기인 형식과 이념만 취했다는 평가가 있다.
조선은 쌀농사와 모내기를 중심으로 강남농법을 도입했고, 동시에 이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이념 체계로서 주자학적 가족 체제와 제사 문화를 받아들였다.
조선을 건국한 혁명 세력의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부국강병 자체에만 집중했지만, 이후 유림이 주자학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강남농법과 주자학적 윤리 체계가 함께 추진되기 시작했다.
농업 생산성 증대와 사회 윤리 개혁은 하나의 통합된 프로젝트로 추진되었으며, 제사 문화는 이 이념 체계의 핵심 실행 수단이 되었다.
세종의 시대 개혁을 이해하려면 1960~70년대 박정희의 산업화와 비교해야 한다. 박정희가 산업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절실한 위기 의식이 세종의 시대에도 있었다.
세종이 불교를 척결한 것은 현대로 치면 정부가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과 같았다. 박정희 시대에 '4대봉사'와 '이중과세 금지' 같은 제사 제한 정책이 추진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두 시대 모두 국가가 경제 발전을 위해 '구시대적 관습'으로 판단한 것들을 제거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강제성을 동반했다. 세종에게 불교 척결이 그것이었다면, 박정희에게 제사 제한이 그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 체제의 변경이 아니라 문화, 윤리, 가족 구조 전체의 전면적 개혁이었다.
이 혁명의 규모와 지독함은 근현대의 개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시집가는 제도와 부계 중심의 가족 구조는 유교와 종법제도의 산물이다. 중국도 진나라 때까지는 모계 사회였다.
한나라 이후 종법제도가 도입되면서 여자가 남자 집으로 가는 것이 국가 제도로 확립되었다. 이때 함께 도입된 것이 장자상속제도였다.
종법제도는 단순한 상속 제도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조직 전체를 만든 근본적 제도 변화였다.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는 신사임당의 외가에 들어와서 살았다. 신사임당의 아버지도 신사임당의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 살았다.
신사임당이 살던 16세기까지도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는 '장가' 관습이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집'이라는 개념이 정착된 것은 조선 초기의 종법제도 도입 이후도 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이성계는 건국 과정에서 무학 대사를 계속 만나며 불교에 의존했다. 그러나 건국 후 자식들에게는 새로운 문명인 주자 성리학만 교육했다.
이는 전략적인 세대 교체를 통해 유교 체제를 도입하려는 의도적 접근이었다. 기성세대의 신앙은 존중하되, 다음 세대부터는 완전히 다른 이념 체계로 교육하는 방식이었다.
중종이 조선 역사에서 유교식 제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왕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중종 반정을 계기로 조선 역사에서 왕권이 본격적으로 약해지고 신권(사림의 권력)이 설치기 시작했다.
이후 사림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제사 문화가 주자 가례에 따라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즉, 제사의 보편화와 조선 왕권의 약화는 동시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조선 시대 내내 문반대부(관료)는 인구의 5~6% 정도에 불과했다. 노비가 40% 정도였으므로, 대다수 백성은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신분이었다.
평민들도 하루하루 생존 문제로 주자 가례에 따른 제사를 할 수 없었다. 주자 가례의 제사는 16세기 남송 때 잘 살던 사람들 수준의 경제력을 요구하는데, 대부분의 조선 백성은 그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사는 우리 전통'이라는 인식은 조선의 지배층만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었다. 대다수 백성에게 제사는 '남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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