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사퇴: 4월부터 이어진 사의 표명
정성호 전 장관의 사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는 올해 4월 검찰 수사권 폐지 논의가 시작될 무렵부터 이미 사퇴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7월경에는 언론을 통해 사의 표명 보도가 나왔으며, 당시 청와대에서는 정 전 장관의 사퇴를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대통령과 정 전 장관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세종대왕과 황희 정승 비유까지 나왔던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사퇴와 그 배경을 짚어본다.
정성호 전 장관의 사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그는 올해 4월 검찰 수사권 폐지 논의가 시작될 무렵부터 이미 사퇴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7월경에는 언론을 통해 사의 표명 보도가 나왔으며, 당시 청와대에서는 정 전 장관의 사퇴를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대통령과 정 전 장관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정성호 전 장관을 주저앉히려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사실 친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의 만류 상황을 세종대왕과 황희 정승의 고사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청와대가 정 전 장관의 사의를 반려하며 장관직 유지를 간곡히 권유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성호 전 장관은 장관직을 수행하며 심각한 고충을 겪었다. 특히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치아 한 부분이 손상되어 짠한 사진으로 남기도 했다. 공직의 높은 자리를 맡으면 이가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수면 장애에도 시달렸으며, 국회 필리버스터 당시 24시간 단독 대기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정성호 전 장관은 애초에 입각 의사가 없었으나, 대통령이 워낙 측근이었고 간곡히 부탁했기에 이 어려운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남미 순방 당시에도 사의를 표명했다. 특히 검찰 수사권 폐지 과정에서 개인적인 절망감을 느끼면서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지방 선거 전 이재명 당시 후보는 검찰 수사권 폐지에 대해 신중론을 펼쳤으나, 지방 선거 후 지지율이 하락하자 당은 당 중심의 강행 처리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입장에서도 사안을 당에 맡기겠다는 메시지로 바뀌었고, 주무 부처 장관인 정성호는 열심히 의견을 냈음에도 국회의 권한이라는 한계 앞에서 의견 반영의 어려움을 겪으며 무력감을 느꼈다.
정성호 전 장관과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9년 지기 관계다. 대통령 당선 전 정 전 장관은 "내가 이재명한테 정치를 가르쳤는데 내가 그 밑에 가서 일하겠냐"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은 두 사람의 깊은 인연과 함께, 장관직을 수락하는 것이 그에게는 역설적인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정성호 장관의 퇴진 이유 중 하나는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에 대한 그의 진심이었다. 그는 검찰의 보안 수사권 전면 폐지를 추진했으나, 이 과정에서 국회 내 강경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유시민 전 의원 등의 공개적인 비판에 직면하며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검찰 수사권 일부 존치 논의에 진심으로 참여했으며, 언론 기사 등을 통해 개인적인 감사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오히려 대통령이 정 장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성호 의원은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스스로를 '비노이자 비문'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강성 지지층으로부터는 '수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오히려 국민의힘 의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정성호 의원은 경기 양주 지역구에서 5선 의원을 지냈다. 경기 북부 지역이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보통의 내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5선은 성실한 지역구 관리 덕분이었으며, 국민의힘에서는 그에 맞설 만한 후보를 내기 어려울 정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성호 전 장관은 1961년 강원 양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학생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노동 법학회에서 활동하며 무영배 전 헌법재판관이나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인연을 맺었다. 또한, 그의 가문은 6.25 전쟁 및 베트남전 참전 용사 후손으로, 3대 가족이 총 28년 5개월 복무한 병역 명문가로 선정될 만큼 국가에 헌신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군사정권 시절 검사 제의를 거절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후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함께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성호 의원은 당내 대표적인 비주류 중진 의원으로 꼽혔다. 그는 강성 지지층, 이른바 '문빠'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멘트를 이어갔다. 후배 기자들에게도 은근한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등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교정, 출입국, 범죄 예방 등 법무부의 핵심 업무에 집중했다. 이러한 행보는 내부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안양교도소를 방문하여 실제 수용자들이 수용된 것과 동일한 면적의 방에 똑같은 인원으로 꾸려 체험했다. 기자들과 함께 현장 행보를 이어가며 언론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 알리는 데 힘썼다.
정성호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관련 민원과 현안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그는 "대통령님, 이거 진짜 아셔야 된다"는 스탠스로 진정성 있게 실질적인 개선을 요구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는 내부 직원들이 국무회의 생중계를 보며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며, 법무 현안에 대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정성호 전 장관은 각종 사건으로 인해 위축되고 야윈 모습을 보였다.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굉장히 불쌍한 이미지가 돼 버렸다", "몸이 점점 작아지신다"며 안타까움을 표할 정도였다. 신체적으로도 수척해진 그의 모습은 주변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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