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사단법인 피파, 왜 돈에 집착하는가?
그러나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며 이와 관련된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됩니다. 남궁민 북칼럼니스트는 "여기는 스위스 민법상 사단법인이에요. 그 비리 사단법인데 도대체 돈에 왜 저렇게 목숨을 걸까 의아하잖아요."라고 지적하며, 이는 결국 인건비, 보너스, 법인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소진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스포츠 순수성을 상징하던 피파가 아디다스 창업자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의 개입으로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 의혹을 파헤친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며 이와 관련된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됩니다. 남궁민 북칼럼니스트는 "여기는 스위스 민법상 사단법인이에요. 그 비리 사단법인데 도대체 돈에 왜 저렇게 목숨을 걸까 의아하잖아요."라고 지적하며, 이는 결국 인건비, 보너스, 법인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소진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책은 2014년에 출간되었으며, 키스트너 기자가 20년간 수집한 판결문과 피파 내부 고발 내용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이 책이 이제 2014년에 나온 책이고 지금 절판된 책인데 쓴 사람이 누구냐면 이제 토마스 키스트너라는 독일의 탐사 전문 기자예요."라고 설명하며, 이 책이 피파 내부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본래 피파는 유럽의 축구인들이 모여 만든 순수 사교 모임에 가까운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직의 성격이 변질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아디다스 창업자의 아들인 호르스트 다슬러의 개입이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이 중심에는 정치인도 아니고 한 사장님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아디다스 사장님이에요."라고 밝히며, 다슬러가 피파를 거대한 상업적 비즈니스 모델로 탈바꿈시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의 개입으로 피파는 기존의 명예직 성격을 잃고 돈과 권력이 오가는 조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디다스의 성장은 1954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 이른바 '베른의 기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서독은 강력한 우승 후보 헝가리를 꺾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승리의 배경에는 아디다스의 혁신적인 축구화가 있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베르의 기적이란 사건이 1954년에 터졌어요. 여기다가 아디가 뭘 했느냐? 우리가는 축구하며 떠오르는 게 밑에 징 박잖아요. 그걸 처음 아디가 시작했다."라고 설명합니다. 아디다스는 세계 최초로 스터드(징)를 박은 축구화를 서독 선수들에게 제공하여 빗속에서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하게 했고, 이는 아디다스가 축구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 피파는 단순한 축구 친목 동아리에 가까운 조직이었고, 회장직 역시 만장일치 박수로 선출되는 명예직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아디다스의 개입으로 피파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지금 아디다스는 회장 하나를 제대로 내 사람으로 꼽으면 전 세계 매출이 달라지니까 그전까지는 뭐 이런 친목 동아리 회장 이런 거니까 그냥 만장일치 박수로 가지고 되는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아디다스가 딱 붙으면서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가 되어 버린 거예요."라고 강조합니다. 이제 피파 회장 선출은 전 세계 아디다스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상업적 결정이 되었고, 이로 인해 회장 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사실은 아디다스 입장에선 자기 밑에 두고 쓰기에 나쁘지 않은 스펙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죠. 네. 약간 그 뭔가 구린 데도 있고 약점도 있어야 부하가 돈도 찔러주면 말도 듣고 이러는 거"라고 설명하며, 다슬러가 아벨란제의 불투명한 사생활을 이용해 그를 통제 가능한 인물로 만들려 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는 다슬러가 피파 회장을 통해 자신의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으며, 약점이 있는 인물이 로비에 더 쉽게 넘어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주앙 아벨란제 피파 회장은 '제3세계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제3세계 독재자들과 밀착 관계를 유지하며 비리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이 아벨란제 별명이 그 제3세계의 친구들이었는데 너무 친구들이어서 가지고 그 독재자들이잖아요 대부분 제3세계 당시 독재자들이 너무 친한 거예요. 불법 복권 사업하고 무기 거래하고 이런 사람이니까 예를 들면은 뭐 남아프리카의 학살자 학살을 버린 독재자가 있다 해도 축구와 정치는 별개입니다 하면서 가서 이제 친하게 놀고"라고 지적합니다. 아벨란제는 '축구와 정치는 별개'라는 명분을 내세워 독재자들의 비리 행위를 묵인하거나 심지어 협력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이는 월드컵 개최지 선정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강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사마란치는 스페인 프랑코 독재 시절 주지사를 지냈으며, 모스크바 주재 대사를 역임하는 동안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에 포섭된 정보원이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사마란치는 스페인 사람이거든요. 근데 일단 프랑코 장군 독재 시절에 주지사를 하던 사람이에요. 근데 모스크바를 가서 굉장히 오래 있는데 후에 이제 정보 공개된 기록을 보니까 KGB의 포섭된 정보원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찌됐든 IOC의 위원장이 됩니다."라고 설명하며, 그의 불투명한 과거와 다슬러의 배후 지원이 위원장 당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다슬러가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 당선 후 가장 먼저 변화한 규정 중 하나는 올림픽에 프로 선수 참가를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올림픽은 아마추어 선수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으나, 이 규정은 전격적으로 삭제되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사마란치가 처음 제일 먼저 바꾼 규정이 이거예요. 오로지 아마추어만 참가할 수 있다고 한 규정을 삭제합니다. 왜냐면 아디다스 같은 기업 입장에선 솔직히 저희도 제일 잘하는 선수 메시 나오는 경기 보고 싶지 뭐 그런 역경을 이겨낸 선수들 경기는 솔직히 별로 안 보고 싶잖아요."라고 언급하며, 이는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여 궁극적으로 스포츠를 더 큰 비즈니스로 만들려는 상업적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올림픽의 아마추어 규정 완화는 곧바로 올림픽의 전면적인 상업화로 이어졌습니다. 프로 선수들의 참여가 허용되면서 올림픽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경쟁하는 무대가 되었고, 이는 독점 스폰서 계약과 같은 대규모 기업 후원을 유치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 산업 전반의 규모가 획기적으로 증대되었지만, 동시에 스포츠 본연의 가치와 아마추어리즘의 정신이 퇴색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계약의 20%가 갑자기 브라질에 있는 한 보험 회사와 체결되었는데, 조사를 통해 아벨란제 회장이 해당 보험 그룹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전체 계약 20%가 갑자기 브라질에 있는 보험 회사 거라서 봤는데 그걸 이제 이 변호사가 해 봤더니 아벨란제가 그 그룹의 이사인 거예요."라고 언급하며, 이는 피파 회장의 지위를 이용한 명백한 사적 이익 추구 행위이자 비리였다고 지적합니다. 이 사건은 피파의 비리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피파에 직접적으로 1조 원에 달하는 수익이 들어와도 이를 빼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다슬러는 ISL을 마케팅 회사로 내세워 수익을 우회적으로 빼내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피파가 직접 수익이 1조가 들어오잖아요. 근데 그걸 빼갈 방법이 없으니까 마케팅 회사에다가 돈을 거기다가 넘겨 가지고 마케팅 회사에다 비용 처리를 해서 마케팅 회사에서는 돈이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거죠."라고 설명합니다. ISL은 피파의 마케팅 권리를 독점적으로 수주하며 막대한 이익을 취했고, 이 자금은 전 세계 피파 선거에서 표를 매수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마케팅 권리가 ISL에 4,500만 스위스 프랑에 매각되었는데, 이는 ISL이 스폰서들에게 2억 프랑에 재판매하여 막대한 차익을 남긴 규모였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피파가 직접 팔았으면 2억 프랑일 걸 4,500만 프랑에 팔았다는 건 쉽게 말해 1억 6천만 프랑을 사실상 ISL에다가 쏴줬다고 볼 수가 있겠죠."라고 지적하며, 이는 피파가 ISL에 약 1억 6천만 프랑을 사실상 쏴준 것과 다름없는 비정상적인 거래였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거래는 ISL이 피파의 비자금 조성 창구 역할을 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호르스트 다슬러가 피파 장악과 로비에만 집중하는 동안, 아디다스는 본업인 상품 경쟁력 강화에 소홀해졌습니다. 그 결과 '신발에 미친 미국인'이 만든 나이키가 급부상하며 아디다스의 시장 지위를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그 사이에 치고 올라온 게 신발에 미친 미국인이 만든 나이키라는 회사였던 거죠. 아디다스는 이때부터 이미 얼마나 스포츠에서 욕을 많이 먹었겠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이미지 자체가 뭔가 음습한 곳, 뭔가 음모가 많은 곳으로 찍히면서 굉장히 아디다스는 오히려 침체를 받습니다."라고 설명하며, 아디다스가 '스포츠를 망치는 음습한 세력'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에 시달리면서 기업 이미지가 크게 추락하고 침체기를 겪었음을 강조합니다.
다슬러 가문은 아디다스 경영권은 매각했으나, ISL 지분만큼은 끝까지 유지하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ISL은 피파의 마케팅 권리를 독점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던 사실상 정체불명의 회사였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근데 웃긴 게 뭐냐면 이 다슬러의 후손들이 안 판 게 있어요. 뭘 안 팔았을까요? ISL 지분은 팔지 않고 갖고 있었습니다. 아디다스 주식 갖고 있으면 정치권에서도 위협받고 욕도 먹고 이러잖아요. 그거는 그냥 다 파털어 버리고 자기들은 ISL이라는 정체불명의 회사에서 나오는 꼬리표 달리지 않은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길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아디다스를 둘러싼 정치적 구설수와 부정적 여론에서 벗어나면서도, ISL을 통해 '꼬리표 달리지 않은 돈'을 음지에서 계속 챙기려는 다슬러 가문의 의도된 선택이었습니다. 다슬러 가문은 아디다스를 포기하고 ISL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삼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그는 피파 내의 오랜 비리와 특정 세력의 독점적 권력을 비판하며 변화를 주장했습니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정몽준 회장은 피파의 야당이었다. 선명 야당입니다. 이런 피파를 다시 순수한 피파로 돌리자는 주장이었냐 아니면 '왜 너네만 해먹냐 나도 좀 해먹자'는 쪽이었냐, 제가 봤을 땐 완전한 표 싸움 정치 싸움이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기는 놈이 먹는 게임이라면 우리끼리 힘을 모아서 우리도 한번 정권 잡아보자."라고 분석합니다. 그의 도전은 순수한 개혁보다는 1국 1표 원칙을 활용한 권력 투쟁적 성격이 강했지만, 오랜 기간 굳건했던 피파의 로비 네트워크와 기득권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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