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시대 계급제 폐지와 평등 사회의 구현
송나라는 과거제를 본격적으로 운영하여 귀족 중심의 사회를 해체하고 혈통이나 지역 연고 대신 시험 위주의 인재 등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왕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형식적인 평등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지방 권력과의 유착을 끊기 위해 선발된 관료들을 연고 없는 타 지역에 배치하는 시스템이 이때 정착되었다.
『중국화하는 일본』을 통해 근대화의 기점과 중앙집권화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송나라는 과거제를 본격적으로 운영하여 귀족 중심의 사회를 해체하고 혈통이나 지역 연고 대신 시험 위주의 인재 등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왕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형식적인 평등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지방 권력과의 유착을 끊기 위해 선발된 관료들을 연고 없는 타 지역에 배치하는 시스템이 이때 정착되었다.
지방 분권화가 강했던 일본은 현재 침체를 탈출하기 위한 방책으로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중앙집권적이고 보편적인 국가 시스템인 '송나라 모델'이 일본 경제 회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도로 이 책을 썼다.
반중 감정과 무관하게 송나라가 구축했던 사회 시스템적 특징을 일본이 차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일반적으로 근대화의 기점은 17세기 유럽의 산업 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로 평가되지만, 이 책은 1000년 전 송나라에서 이미 근대적 사회 시스템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중국화'는 사실상 송나라화를 의미하며, 송나라가 근대화의 중요한 단계를 이미 거쳤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은 '송 근세설'이라 불리며, 1920년대 내토고난 학자의 주창 이후 일본 역사학계의 주류 학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송나라 시대에 중앙집권적 관료제, 시장 경제 발전, 보편적 통치 이념 등 근대적 요소들이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사실은 근대화라는 게 천년 전 속나라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중국화라는 거 사실상 속나라 화를 얘기하고 송나라 화를 얘기한 이유는 이미 근대화가 천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송나라 시대에 전국 단위의 과거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국에서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치르고 채점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고도화된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쇄 산업의 발달과 출판의 대중화가 선행되어야 했으며,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전국적인 학교 시스템과 마을 단위의 교육 인프라가 필수적이었다.
당시 약 1억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국가에서 과거제가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와 고도화된 시스템 덕분이었다.
송나라는 과거 급제자를 고향이 아닌 타지로 배치하는 순환 근무 제도를 정착시켜 지방 유지의 자제들이 관직을 독점하며 왕처럼 군림하는 폐단을 차단했다.
이는 지방관과 지역 세력 간의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한 카르텔 형성을 해체하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고려의 귀족 사회를 지나 왕권 강화기에 접어든 세종은 지역 토호의 횡포를 견제해야 했던 역사적 맥락에서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했다. 학계는 이를 지방관이 지역 세력에 위축되지 않도록 중앙 정부가 배려한 고육지책으로 해석한다.
고려의 귀족 사회를 지나 왕권 강화기에 지역 토호들의 횡포가 만연했던 역사적 맥락에서, 이 법은 지방관이 지역 세력에게 주눅 들지 않도록 중앙 정부가 배려한 고육지책이라는 학계의 해석이 존재한다.
이는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진 지방관에 대한 백성의 억울함을 막기 위한 동시에,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지역 토호들이 물류 중간에서 장난치는 구조를 차단하고, 중앙정부와 납세자들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세금 납부 방식의 변화는 백성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고 시장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금을 현물 대신 화폐로 내기 시작하면서 특정 지역 특산물 의무 종사 관행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직업의 자유는 시장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개인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기회를 늘렸다.
하지만 상업 발전과 함께 부의 편중 및 양극화, 대부호의 등장과 같은 부작용도 동반되었다.
송나라는 건국 초기 공신들이 지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연회 자리에서 병권을 회수하는 정치적 이벤트를 벌였다. 이후 과거제로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 집단을 구축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했다.
한 번의 연회에서 공신들의 병권을 모두 걷어들여 지방 유지의 권한을 제거하고, 중앙 관료가 전국을 통치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이는 과거제를 통해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 집단을 구축함으로써 중앙집권화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었다.
혈통 중심의 귀족 사회를 넘어 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체제가 성리학의 정착과 함께 자리 잡았다.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사회적 이동성을 정당화하며 국가 통치 이념으로 제도화됐다.
이는 국가 시스템이 부재했던 이전과 달리 과거제 응시 과목과 통치 이념이 제도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혈통 중심의 귀족 사회에서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 체제로의 변화를 가속화했다.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성리학의 논리는 대중의 노력과 사회적 이동성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청나라 옹정 황제는 대의각미록을 통해 혈통과 관계없이 진리를 터득한 자는 누구든지 황제가 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적 통치 이념을 천명했다.
이는 만주족 황제로서 한족의 반발을 무마하고 실력 중심의 통치를 강조하려는 목적이었으며, 현대의 시민권 개념과 유사한 파격적인 인재 등용 이념을 제시했다.
옹정 황제의 이러한 사상은 과거제의 발전을 통해 형성된 능력주의 사회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몽골의 침입과 명나라의 등장은 송나라의 산업 혁명급 경제 개혁을 무산시켰다. 명은 주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이갑제를 도입해 세계화로 나아가던 흐름을 반전시키며 퇴보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원나라가 들어선 후 명나라가 건국되면서 송나라의 근대적 개혁이 무산되고 사회가 퇴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명나라는 주민의 이동 자유를 제한하고 지역에 묶는 이갑제를 도입하는 등 반세계화 정책으로 회귀하며 통제와 감시를 강화했다.
명나라는 송나라의 개방 체제를 접고 통제와 감시 중심의 사회로 돌아섰다.
특정 물자 생산을 강제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세금을 현물(물납)로 다시 전환하고 해외 무역을 금지하여 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회귀했다.
여러 호를 묶어서 이제 도망가면 연대 책임, 오호담당제 같은 걸 하고, 지역 유지들을 이장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몽골 시대 경제 성장에 따라 화폐 수요가 급증했으나, 은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화폐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화폐 가치 상승에 따른 디플레이션은 경제 침체를 유발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국가 관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명나라는 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거주지를 지정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회귀했다.
중앙집권화는 사회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직업의 자유나 이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허용할 경우 사회적 변동성이 커져 내전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일본의 에도 시대는 이러한 사회적 역동성을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안정성을 택한 사례로, 장기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발전 속도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남궁민 칼럼니스트는 일본의 '중국화' 과정을 분석하며 우리 사회 역시 일본화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은지 성찰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그는 중앙집권적 시스템과 분권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검토하여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을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자막에서 근거가 되는 대목을 찾아 답합니다.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의 다음 글도 받아볼까요?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에 새 영상이 올라오면, 방금 읽으신 것처럼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이 채널은 지난 7일 동안 17편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