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병은 술병 아닌 꿀단지, 800년 전 대나무 화물표가 증명
마도선에서 발견된 상감청자 매병과 함께 출토된 대나무 화물표를 분석한 결과, 매병이 꿀을 담는 용기였음이 확인됐다.
고려 시대 매병이 '성준'으로 불리며 꿀을 담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는 800년 전 고려인들이 보낸 화물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이 발견은 그동안 매병을 술병이나 꽃병으로 추측했던 기존 학설을 뒤집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고려 시대 마도선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당시 생활상과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마도선에서 발견된 상감청자 매병과 함께 출토된 대나무 화물표를 분석한 결과, 매병이 꿀을 담는 용기였음이 확인됐다.
고려 시대 매병이 '성준'으로 불리며 꿀을 담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는 800년 전 고려인들이 보낸 화물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이 발견은 그동안 매병을 술병이나 꽃병으로 추측했던 기존 학설을 뒤집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바닷속에서 원형 그대로 발견된 상감청자 매병은 발굴팀이 조심스럽게 속을 덜어냈으나 벌만 가득할 뿐 특별한 내용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발견된 완전한 형태의 상감청자 매병 내부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유기물의 부패로 인해 구체적인 내용물 분석에 한계를 보였다.
이 유물은 대(臺) 위에 승반이 있고 그 위에 주전자가 올라가는 형태를 보여주어, 당시 고려인들이 청자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학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전문가가 설명했다.
마도선에서 발견된 청자 유물들은 기존에 11세기로 추정되던 제작 기법인 내화토 받침이 13세기까지 사용되었음을 확인시켰다.
틀을 이용한 문양 찍기 등 대량 생산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도자기 역사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화물표에 적힌 '대장군 김순영'이라는 인물의 이름과 '무진', '정묘' 간지가 발견되어 배의 정확한 침몰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됐다.
고려사 기록과 김순영의 묘지명을 교차 검증한 결과, 그의 재직 기간을 파악했고, 이를 통해 정묘년인 1207년과 무진년인 1208년이 출항 시기였다.
이로써 태안 마도선의 침몰 연대는 1208년으로 확정되어 고려 시대 역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항아리 속 유기물 분석 결과 밴댕이 뼈와 갯벌에 서식하는 농게가 다량 출토되어 고려인들이 젓갈을 즐겨 먹었음을 입증했다.
이번 발견은 고려인들의 밥상에 올라갔던 젓갈의 존재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현대와 이어지는 고려 시대의 식생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도선에서 발견된 많은 양의 젓갈은 고려 시대 젓갈이 왕이 정책적으로 장려했던 음식임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젓갈이 소수의 고급 반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흔하지도 않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철제 그릇의 희소성으로 된장은 주로 양반가에서 섭취했으며, 일반 서민들은 된장 대신 소금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된 벼 껍질을 분석한 결과, 현생 벼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는 이를 오늘날 재배하는 자포니카 계열 품종과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나 삼국 시대 벼보다 현생 벼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품종에 비해 찰기가 부족하고 생산성이 떨어졌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 기존 문헌 기록에는 석탄 관련 내용이 거의 없었으나, 마도선에서 상당량의 석탄이 실려 있어 놀라움을 안겼다.
실린 석탄의 양으로 미루어 단순 연료가 아닌 공납품으로 추정되며, 이는 고려 시대 석탄 사용 범위에 대한 연구의 새로운 단초를 제공한다.
마도선은 곡창지대인 죽산, 회진, 수령현에서 개경으로 향하던 배로, 길이가 10m 정도의 평저선 구조를 가진 소규모 화물선으로 파악된다.
이는 정기적인 세곡선보다는 비정기적인 공물이나 관리에게 보내는 선물 등 공적인 성격의 화물을 운송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
태안 앞바다 난행량은 서해에서 물살이 가장 센 구간 중 하나로, 한선의 경우 파도 2m 정도에도 항해가 상당히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도선은 거센 파도와 조류를 이기지 못하고 태안반도에 있는 암초에 부딪혀 침수되고 부력을 잃음으로써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사고 빈발로 고려 인종 때 굴포 운하 건설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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