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소속 버스 기사만 서로 인사한다
이 경험은 마치 서로 다른 부족이 각자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며, 같은 노선을 운행하지만 소속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는 특정 집단 내에서 형성되는 유대감과 외부 집단과의 경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더위 속 냉방이 안 되는 버스를 탄 경험을 통해 분별심의 대상을 탐색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 경험은 마치 서로 다른 부족이 각자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며, 같은 노선을 운행하지만 소속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는 특정 집단 내에서 형성되는 유대감과 외부 집단과의 경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회사 기사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인사를 건넨 후 마치 '아, 아니구나' 하는 듯이 행동을 거두는 모습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취소하려는 심리가 엿보였습니다. 인사가 나쁜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려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드문 상황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정류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땀을 흘리며 더위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만큼 냉방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필요성이 절실했던 때였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빵빵한 에어컨을 기대하며 버스에 오르기를 고대했습니다. 뜨거운 땀을 식히고 싶었던 승객들의 기대와 달리, 버스에 올라타자 냉방이 전혀 되지 않아 바깥보다 오히려 더 더운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탄 승객들 모두 탄식을 터뜨리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버스 안에서는 맨 앞자리의 '로얄석'을 선호합니다. 이 자리는 통창으로 바깥 풍경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보통 바퀴 위에 있어 다른 좌석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어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합니다.
비록 운전 기사님과 가까운 자리이지만, 넓은 시야와 쾌적한 환경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좌석입니다.
버스에 앉았을 때 의자가 뜨끈한 것을 느끼고, 기사님이 출발 전 냉방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짐작했습니다. 제가 탄 정류장이 종점이었는데, 이는 버스가 차고지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원한 버스는 기사님들이 시동을 걸고 최소 5분에서 10분 정도 미리 냉방을 해놓고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이러한 준비 과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좌석 위에서 나오는 공기를 만져보니 에어컨 바람이 아닌 따뜻한 온풍이었습니다. 그 순간 버스 기사를 향한 분별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사님은 추위를 많이 타거나 더위를 잘 안 타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의 마음은 즉각적으로 기사님에 대한 비판적인 판단으로 기울었습니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좀 에어컨을 틀고 다니시지, 자기만 괜찮다고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비판적인 마음이 즉각적으로 올라왔습니다. 기사님에게 '여기 에어컨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직접 물어보고 싶은 충동도 느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의 표출이었습니다.
최근 '분별심'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기에, 이번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습니다. 분별심은 어떤 사건에 대해 '좋다/싫다', '옳다/그르다'와 같이 강하게 판단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버스 기사에 대한 비판적인 분별심이 올라왔지만, '이런 날도 있고, 이런 버스와 이런 기사님을 만났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감정을 가라앉혔습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연습이었습니다.
분별심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관찰하자, 운전 중 기사님이 쉬지 않고 소리를 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분별심이 가득한 상태였다면 '에어컨도 안 틀고 성질까지 내면서 운전을 하네'라고 더 부정적으로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침착하게 바라보니, 기사님 역시 힘든 상황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보였습니다.
기사님의 스트레스를 인지하자, 분별심의 대상이 기사님 개인에서 버스 회사로 옮겨갔습니다. '회사가 이런 식으로 버스를 운영해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버스를 오전에 운행하는 것이 회사의 정책인지, 혹시 문제가 있는 버스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항의를 해야 한다면, 기사님이 아닌 회사에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미쳤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회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기사님은 회사로부터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에 화를 내며 '버스를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회사에서 종점인 이곳으로 버스를 다시 가져와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사님은 이미 출발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난감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통화를 통해 버스 회사 또한 고의로 안 좋은 버스를 이른 아침에 운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사님에게 향했던 분별심이 기사님의 스트레스를 보고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분별심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나 시스템을 향해 분별심을 돌려놓고, 스스로는 '이제 분별심이 없어졌고 나는 편안하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성찰을 통해, 분별심이 단순히 대상을 바꾸어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진행될 무렵, 뒤에 앉아있던 한 청년이 결국 참지 못하고 기사님에게 다가와 "기사님, 지금 에어컨이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저의 분별심을 억눌렀다는 이유로, 직접 항의한 이 청년을 다시 분별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오히려 마음속으로는 그 청년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대신 더위를 표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저의 편안함이 타인의 불편함 위에서 얻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대신 목소리를 내주었기에 제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편안함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에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말하듯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자유인이건 종이건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종교적 가르침은 결국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이며, 개인이 느끼는 평화나 편안함이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자막에서 근거가 되는 대목을 찾아 답합니다.
뉴욕털게의 다음 글도 받아볼까요?
뉴욕털게에 새 영상이 올라오면, 방금 읽으신 것처럼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이 채널은 지난 7일 동안 1편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