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전 세계적 기념의 해
이는 전 세계인들이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함께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김구 선생의 업적과 철학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그의 정신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썬킴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백범 김구 탄생 기념일이래요. 전 세계인들이 다 같이 기념하는 해입니다."라고 설명하며, 이번 기념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네스코가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삶과 독립운동, 그리고 문화 강국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이는 전 세계인들이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함께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김구 선생의 업적과 철학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그의 정신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썬킴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백범 김구 탄생 기념일이래요. 전 세계인들이 다 같이 기념하는 해입니다."라고 설명하며, 이번 기념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쓰레기통의 배춧잎을 씻어 국을 끓여 먹을 정도로 궁핍했던 시기에 작성된 것이다. 썬킴은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백범일지 상권은 아들 둘에게 쓴 유서예요. 상해 임시정부에서 진짜 찢어지게 가난해서 먹을 게 없어 가지고 쓰레기통에 배추잎을 끄집어내 물에 씻어 배추국을 끓여 먹던 시절에 쓴 거죠."라고 밝혔다.
썬킴은 '백범일지'가 역사서라기보다는 김구 선생이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임을 강조했다. 50세가 넘어 10대 시절의 일을 회상하며 기록했기 때문에, 세세한 날짜나 요일 등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백범일지는 역사서가 아니라 두 아들에게 쓴 유서입니다. 나이 50이 넘어 10대 때 일을 기록하니 세세한 날짜나 요일이 틀릴 수 있는데, 너무 현미경을 들이대며 봐서는 안 됩니다."라며, '백범일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범일지에는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짐작하게 하는 충격적인 기록이 담겨 있다. 썬킴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그가 태어났을 때 죽기를 바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는 당시 조선의 민초들이 겪었던 삶의 고난과 비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자식의 죽음을 바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김구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삶의 무게를 느끼며 성장해야 했다. 이 일화는 단순히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 당대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낸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바랐다는 기록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비극적인 배경이자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고난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썬킴은 "가난해서 먹을 게 없으니까 우리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죽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백범일지에 그런 기록이 있어요."라고 설명하며, 당시 상황의 참혹함을 전했다.
김구 선생은 동학 농민군 진압 과정에서 위험에 처했지만,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태훈 선생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양반 유지였던 안태훈 선생은 김구 선생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보호해 주었다. 썬킴은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던 양반 유지가 김구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보호해 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 선생님이었습니다."라고 언급하며, 두 독립운동가의 집안이 맺은 특별한 인연의 시작을 밝혔다.
썬킴은 백범일지에 기록된 김구 선생의 일화를 전하며, 안중근 의사가 자신보다 어리지만 탁월한 사격 실력을 가졌다고 평했던 내용을 소개했다. 이는 두 인물의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썬킴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저 친구는 정말 총을 잘 쏜다. 백발백중이다."라는 김구 선생의 평가를 인용하며, 안중근 의사의 젊은 시절 면모를 설명했다.
백범일지에는 그가 칼을 찬 일본인을 맨몸으로 제압하여 처단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썬킴은 "칼을 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쟤를 처단하겠다 해서 육박전을 벌여 결국엔 칼을 뺏어서 처단했다라고 백범일지에 나와 있어요."라고 전하며, 김구 선생의 단호한 결의와 실행력을 강조했다.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던 중에도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강한 의지를 다졌다. 그는 일본 순사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저 순사만큼 독립운동에 매진했던가'라고 자문했다. 이 성찰은 그에게 더 큰 결의를 심어주었다.
김구 선생은 고문 속에서조차 자신의 독립운동을 반성하며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했다. 이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썬킴은 김구 선생의 이러한 다짐을 인용하며 "내가 독립운동을 하는데 저 일본 순사만큼 열심히 독립운동을 한 적이 있는가? 나도 정말 반성을 하고 나도 정말 열심히 독립운동을 해야 되겠다."라고 설명했다.
아들이 혹여나 좌절할까 염려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경기 감사(지금의 도지사)가 되는 것보다 훨씬 자랑스럽다고 격려했다. 곽낙원 여사의 이러한 지지는 김구 선생이 흔들리지 않고 독립운동을 이어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되었다.
어머니의 굳건한 믿음은 김구 선생에게 깊은 용기를 주었고, 그의 독립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곽낙원 여사는 단순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을 넘어, 독립운동의 대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썬킴은 "네가 경기 감사하는 거보다 독립운동하는 것이 더 자랑스럽다. 거기서 정말 기죽지 말라."는 곽낙원 여사의 말을 인용하며,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처음에는 문직기로 일하게 하려 했으나, 김구 선생의 강렬한 인상에 깊은 인상을 받아 다음 날 바로 경무국장으로 임명했다. 경무국장은 현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 안창호 선생이 김구 선생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썬킴은 "그 정말로 잘하겠다. 딱. 근데 아 이번에 안창호 선생님의 기록을 보면 딱 봐도 이 김구라는 청년의 눈을 보니까 포스가 달라 보였대요. 그래서 문직기가 아니라 바로 그다음 날 경무국장으로 임명을 해 주는데 경무국장이 지금 치면 경찰청장이거든요."라고 설명하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1931년, 국내 한 언론사의 만보산 사건 왜곡 보도는 역사상 최악의 오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중국 만보산에서 조선인과 중국 현지인들의 충돌로 조선인들이 두들겨 맞아 죽었다는 허위 보도는 조선 내 화교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 가짜 뉴스로 인해 평양 등지에서 많은 화교들이 조선인들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특히 평양에 거주하던 화교들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때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피해 상황이 심각했다. 이 사건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썬킴은 "국내 한 언론사가 가짜 뉴스를 보도해 버려요. 역사상 최악의 오보 중의 하나예요. 중국 만보산에서 조선인과 중국 현지인들과 충돌해서 조선인들이 두들겨 맞아 죽었다고 보도를 해버린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땅에 있던 조선인들이 화교들을 때려죽여서 많이 맞아 죽습니다. 특히 평양에 있던 화교들이 굉장히 많이 맞아 죽었고 이때 나온 말이 '호떡집에 불났다'예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인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취직 등 여러 면에서 좌절을 겪었다. 아무리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인 행세를 해도 호적을 제출하는 순간 조선인임이 드러나 번번이 막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조선인으로서 대접받기 위해서는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봉창 의사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상해로 건너가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입단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결단은 개인적인 좌절을 넘어 민족의 독립을 향한 강렬한 의지로 승화된 것이었다.
썬킴은 "취직을 하려고 해도 막판에 걸려요. 내가 아무리 일본 말 잘하고 일본인 척하더라도 취직하려면 호적을 갖다 내야 되거든. 딱 보니까 '너 조선인이었냐?' 이걸 느껴요.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내가 조선인이란 건 바뀔 수가 없구나. 그럼 내가 조선인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뭐가 되냐? 조선의 나라를 다시 세워야 되는구나라고 하면서 상해에 건너가서 김구 선생님이 한인애국단에 입단을 하세요."라고 당시 이봉창 의사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봉창 의사는 의거를 앞두고 31세의 나이로 "지상의 쾌락이 있다고 하면 제가 31년 동안 다 누릴 대로 누렸습니다. 지금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누릴 준비가 됐습니다. 폭탄 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그의 비장한 각오와 죽음을 초월한 독립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직접 폭탄을 들고 자신이 쓴 결의문을 목에 건 채 사진을 찍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봉창 의사의 이러한 결연한 태도는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전율을 안겨준다.
이봉창 의사의 이 말은 단순한 희생을 넘어, 독립을 위한 헌신이 그에게는 최고의 기쁨이자 영원한 쾌락이었음을 상징한다. 그의 삶과 죽음은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숭고한 희생으로 기억될 것이다.
썬킴은 "그때 나이가 31살이셨는데 이런 말을 하셨대요. '지상의 쾌락이 있다고 하면 제가 31년 동안 다 누릴 대로 누렸습니다. 지금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누릴 준비가 됐습니다. 폭탄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직접 폭탄 들고 자기가 쓴 결의문을 목에 걸고 찍은 사진이에요."라고 설명하며 그의 마지막을 기렸다.
김구 선생은 이러한 제약 속에서 고심 끝에 일단 개인으로 귀국하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이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군정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며, 독립 후에도 한국이 겪어야 했던 국제적 난관을 상징한다.
썬킴은 "김구 선생님께서 고민하시다가 일단 귀국을 하자 하면서 일단 동의서의 사인을 해요. 개인으로 그럼 귀국을 하겠다."라고 언급하며, 당시 김구 선생의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은 명당으로 알려진 효창원에 골프장을 건설했다. 이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안치된 효창원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려는 일제의 만행이었다. 민족의 성지이자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에 오락 시설을 만든 것은,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잔혹한 식민 지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썬킴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딱 보니까 어이 효창원 명당이라고 들었다 됐어. 여기다가 그러면 골프장 만들어라 됐어 해가지고 효창원에다가 골프장을 만들어 버립니다."라고 설명하며, 일제의 비인도적인 행태를 비판했다.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 편에서 김구 선생은 진정한 조국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강국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현재의 K-컬처 열풍과 맞물려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김구 선생은 강력한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는 인류의 정신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기를 염원했다. 그의 이러한 비전은 오늘날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현실과 연결되며, 유네스코가 주목한 핵심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썬킴은 "유네스코가 왜 김구 선생님을 탄생 150주년을 우리가 기린 해로 만들었냐면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이란 게 있죠. 내가 정말 꿈꾸는 조국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강국이 아니다. 나는 나의 조국이 정말로 문화 강국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히며, 그의 문화 강국론이 가진 시대적 의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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