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뒤흔든 각기병, 전사자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다
일본군 내에서 각기병은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한 군대에서만 약 25만 명의 각기병 환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2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전쟁터 전사자 약 5만 명 중 절반이 각기병으로 사망하는 등, 전투 손실보다 큰 비전투 손실을 기록했다.
백미 편식과 오해로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각기병의 역사와 그 속에서 밝혀진 비타민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일본군 내에서 각기병은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한 군대에서만 약 25만 명의 각기병 환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2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전쟁터 전사자 약 5만 명 중 절반이 각기병으로 사망하는 등, 전투 손실보다 큰 비전투 손실을 기록했다.
비타민 B1(티아민)이 결핍되면 손발 저림과 감각 저하, 하지마비로 이어지는 건성 각기병이나 부종과 심부전 등을 유발하는 습성 각기병으로 진행된다. 신경계 각기병은 손발 저림과 감각 저하로 시작하여 다리 근육 약화, 마비, 혼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심혈관계 각기병은 몸에 부종이 생기고 심박수가 증가하다가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사망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모든 증상은 비타민 B1(티아민) 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비타민 B 결핍은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같은 신경학적 문제를 동반하며, 알코올 의존 환자에게는 치료 처방 시 필수적으로 비타민을 투여한다. 알코올 의존 시 영양 결핍이 심화되고 비타민 흡수가 저하되기 때문이다.
위 절제술을 받은 환자나 투석 환자도 비타민 B1 부족을 겪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과 같은 신경학적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
각기병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황제내경'으로, 기원전 7~8세기경 다리 마비와 부종 같은 증상이 기술되어 있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각기병 기록이 특히 많은 이유와 관련이 깊다.
주식의 차이가 발병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에서는 각기병 기록이 거의 없다. 쌀은 도정 과정에서 비타민 B1이 거의 사라지는 반면, 빵은 반죽 후 굽는 과정에서 비타민 B1이 손실되지 않고 빵 구울 때 들어가는 효모(이스트)가 비타민 B1을 생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백미 위주의 식단은 비타민 B1 결핍을 유발하기 쉬웠으며,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각기병이 흔했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기원전 24년 아라비아 원정에 나선 로마군은 현지 보급과 약탈이 막히자 오염된 물과 마른 빵에 의존했고, 그 결과 군인들 사이에서 다리 마비와 감각 상실 증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오염된 물과 마른 빵 위주의 식량을 섭취하게 되었고, 군인들에게 다리 마비와 감각 상실 증상이 나타나 서양 역사 속 최초의 각기병 사례로 추정된다.
8세기 나라 시대 귀족들의 백미 섭취는 에도 시대 쇼군들의 사망으로 이어질 만큼 상류층 전반에 만연한 풍토였다.
8세기 나라 시대에는 귀족들이 백미를 즐겨 먹었으며, 17세기부터 19세기 에도 시대에는 쇼군들이 각기병으로 사망하는 등 상류층에 각기병이 만연했다.
조선 왕조 500년간 실록에서 각기병 기록은 10건 미만에 불과했다. 이는 잔치나 절기마다 오곡밥과 약밥을 먹어 비타민 B군을 보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과 달리 불교의 영향으로 인한 육식 금지령이 없었으며, 왕실은 오히려 육식을 즐겨 단백질과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했다.
특히 마늘의 알리신 성분이 비타민 B1(티아민)의 흡수율을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여 각기병 예방에 기여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확장 정책을 위해 대규모 모병을 진행하며 군대에 오면 배불리 흰쌀밥을 먹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흰쌀밥은 꿈이었다.
해군처럼 장기 항해를 하는 경우 백미 위주 식단으로 인해 각기병 발병률이 급증했다. 당시 파스테르와 코흐의 세균 이론이 지배적이어서 각기병을 전염병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이러한 오해와 백미 선호 문화가 겹쳐 일본군 내 각기병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영국 유학 시절 통계학을 익힌 타카키 가네히로는 장교와 수병 간의 식단 차이를 분석해 백미 위주의 식사가 각기병 발병의 핵심 원인임을 시사했다.
그는 장교나 수병처럼 흰쌀밥을 주로 먹는 계층은 각기병에 잘 걸리는 반면, 잡곡을 먹는 죄수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백미 위주 식단과 각기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도출했다.
1883년 류조호 항해에서는 승조원 376명 중 169명이 각기병에 걸려 25명이 사망했다. 이에 다카키 가네히로는 식단 개선을 시도했다.
1884년 츠쿠바호 항해에서는 육류, 빵, 야채, 보리밥을 공급하여 각기병 환자가 14명으로 줄고 사망자가 0명으로 기록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실험을 통해 각기병이 영양 불균형과 연관되어 있음을 명확히 확인했다.
정부의 백미 공급 약속 때문에 군대 내 보리밥 보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다카키 가네히로는 보리밥을 거부감 없이 섭취하게 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보리밥, 밀가루, 감자, 고기를 섞은 카레라이스가 도입되었다. 특정 요일에 카레라이스를 제공하여 승조원들이 날짜를 인식하게 했고, 1880년대 후반에는 해군 내 각기병 발생률이 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해군은 이미 보리밥을 통해 각기병을 해결했지만, 육군은 이를 '미개한 동양식'이라며 거부했다. 육군은 각기병을 세균에 의한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보리밥 처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육군의 고집으로 인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 동안 육군에서만 25만 명의 각기병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2만 5천 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규모 비전투 손실이 발생했다.
해군이 과학적 접근으로 질병을 극복한 반면, 육군은 정치적 이유와 오해로 인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자초한 사례로 기록된다.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자바섬에서 각기병을 연구하던 중 실험용 닭의 다리 마비 증상을 관찰했다. 그는 백미를 먹인 닭에게 각기병이 발병하고 현미로 바꾸자 회복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에이크만은 현미의 특정 성분이 백미의 독소를 예방한다고 추측했으나, 그의 제자는 이를 미량 영양소 결핍으로 정의하며 비타민 발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오늘날 각기병은 비타민 B1(티아민) 부족으로 명확히 규명되었다.
당시 지배적이던 세균설을 검증하던 에이크만은 실험실 닭에게 백미 대신 현미를 급여했을 때 마비 증상이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원인을 규명했다. 당시 세균설이 지배적이었으나 원인균을 찾지 못했다.
그는 실험실 닭이 백미를 먹으면 하체 마비 증상을 보이다가 요리사가 백미 대신 현미를 주자 다시 회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관찰을 통해 백미와 현미 사이에 각기병과 관련된 어떤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에이크만은 현미의 특정 성분이 백미의 독소를 막는다고 추측했으나, 그의 제자가 이를 미량 영양소 부족에 의한 결핍증으로 정의하며 현대적인 결핍증 개념이 탄생했다.
이 연구는 비타민의 존재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에이크만과 그 동료들은 이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각기병은 비타민 B1(티아민) 부족으로 명확히 규명되었다.
서양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하지 않아 각기병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일본의 대규모 연구와 네덜란드의 실험이 미량 영양소의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각기병 연구는 질병 극복을 넘어 영양학 발전과 미량 영양소의 중요성을 의학사에 각인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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