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컬렉션,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일부 유물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 반출된 한국 문화재, 오구라 컬렉션의 실체와 반환 노력을 조명한다.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일부 유물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의미한다.
기증된 창녕 유물 등 다양한 수집품 가운데 유독 해당 유물들만 이 같은 지위를 얻었다.
특히 창녕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1918년에서 19년에 걸쳐 발굴되었으며,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 가야 유물들은 당시 기록에 '기증품'으로 명시되어 있다.
1958년 한일 협상을 통해 반출된 유물들도 있었으나, 국보로 지정된 이들 가야 유물은 현재까지 일본에 남아있다.
최근 공개된 일본의 한일협정 관련 문서에는 창녕 유물이 언급되어 있으며, 일본은 창녕 유물을 한국에서 신라 금관 발굴 이후 2류급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국 입장에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반환을 거부했다.
특히 오구라 컬렉션의 유물들은 교동 고분군 출토품보다 중요한 최고급 유물로 평가받았다.
문화재 지정은 일본이 반환을 거부하는 좋은 구실이 됐다. 개인이 구입한 문화재는 국가가 반환시킬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 가운데, 1961년 외교문서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사 기록도 남아 있다.
또한, 해당 유물들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반환을 막는 구실로 활용했으며, 1961년 일본 외교문서에는 문화재 지정 조사를 진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는 조선의 고적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과거 자신들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증거 찾기에 나섰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역사 연구를 중시하며 추진한 이 사업은 남부 가야는 왜(일본)가, 북부는 중국이 지배했다는 식민 사관을 고고학적인 유물로서 증명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일제 강점기 학자는 경주를 예루살렘과 로마에 비유하며 성지로 숭배했다. 일본서기에 적힌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설을 근거로 삼아 경주를 일본의 옛 점령지로 규정한 결과다.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는 경주를 예루살렘과 로마에 비유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주여, 경주여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봤을 때의 심정은 실로 지금 나의 심정에 버금가리라. 나의 로마가 눈앞에 있다. 나의 심장은 고동치기 시작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경주 방문 기록이 남아있다.
식민 지배 정당성을 확보하려던 조선총독부는 고적 조사 사업을 통해 남부의 임나일본부설과 북부의 중국 지배설을 역사적 근거로 활용했다.
이는 남부는 왜가 지배하고 북부는 중국이 지배했다는 논리를 구축하여 현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연구자들은 조선총독부가 식민 사관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려 시도했다고 분석한다.
조선총독부는 이 같은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여 일본의 지배가 당연하다는 정당성을 내세우려 했다는 평가이다.
조선총독부와 도쿄대 간 발굴 유물 반출 계약은 도쿄대가 총독부가 지정하는 중복 유물에 한해 가져간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도쿄대는 발굴 유물 보고서 작성을 위해 발굴 유물 전체를 일본 학교로 반출했고, 약속과 달리 85년 넘게 유물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당시 발굴 현장 지휘자가 유물을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판매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금관총 유물을 수습한 모로가 히데오가 일부 유물을 개인적으로 소장하다가 수집가들에게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오구라 컬렉션에는 공식 발굴 유물인 금관총 유물이 8점이나 포함되어 있어 의혹을 더한다.
한일 협정 당시 일본 측은 유물 반출 가능성을 부정하며 반환을 거부했다.
일제는 식민 통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1914년부터 경복궁 일대 전각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철거된 자선당은 일본 재벌 오쿠라 기하치로의 저택으로 옮겨져 개인 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보호 원칙이 권력자들의 사적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고적조사위원회는 해당 석탑을 너무 흔하고 반듯한 표준형이라며 양도를 허가했다.
이 석탑은 현재 도쿄 호텔 내 오쿠라 집고관에 있으며, 이천 시민들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반출 목록에는 최치원의 '계원필경' 등 역사 인물 전기와 문집이 다수 포함됐다. 전문가는 이를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권력 남용의 소산으로 분석하며, 도쿄 호텔 오쿠라 집고관에 머무는 석탑에 대해서도 이천 시민들이 반환을 거듭 요구하는 중이다.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일본은 관동 대지진으로 오대산 사고본 실록이 소실되었다며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일본 유학 중 도쿄대에 보관된 사실을 확인하고, 여섯 차례 일본 방문과 세 차례 도쿄 대학과의 협상을 통해 반환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2006년 7월, 오대산 사고본 실록 576권이 9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혜문 스님이 2006년 10월 일본 궁내청을 직접 방문해 명성황후 국장도감 의궤 등을 열람했다.
열람 결과 의궤에는 '대정 11년 5월 조선총독부가 기증했다'는 붉은 도장(주인)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도장을 통해 조선총독부가 왕실 의궤를 의도적으로 유출하여 일본 궁내청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교토 대학은 일제 강점기 시절 기증받은 한반도 출토 유물들에 대해 한국 학자들과 함께 조사 작업을 펼치고 있다.
수십 년간 잊혔던 교토 대학 수장고의 유물들이 이 공동 조사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소장자와의 협력은 정확한 실태 파악과 반환 논의를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오대산 사고본 조선 왕실 의궤의 반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국민적 관심이 큰 유물 외에도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은 수많은 문화재가 여전히 일본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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