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된 폐가를 매입한 딸과 걱정돼 찾아온 아버지
최별 씨는 인터넷에서 299평의 115년 된 폐가를 4,400만 원에 매입했다.
딸이 갑작스럽게 전북 김제의 폐가를 샀다는 소식에 황당함을 느낀 아버지 최찬석 씨는 딸의 근황이 걱정돼 집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부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115년 된 300평 시골집이 부녀의 갈등을 풀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최별 씨는 인터넷에서 299평의 115년 된 폐가를 4,400만 원에 매입했다.
딸이 갑작스럽게 전북 김제의 폐가를 샀다는 소식에 황당함을 느낀 아버지 최찬석 씨는 딸의 근황이 걱정돼 집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부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최별 씨는 인터넷 썸네일에서 299평에 4,400만 원이라는 조건에 이끌려 매물 정보를 클릭했다.
논밭 사이에 섬처럼 자리 잡은 집의 풍경은 바닷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최별 씨는 집의 상태보다 주변 경관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계약을 결정했다.
방송국 PD였던 최별 씨는 휴가와 시간을 활용해 폐가를 직접 보수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집을 고치는 과정을 담은 콘텐츠는 예상외로 큰 인기를 끌며 3개월 만에 '떡상'했고, 이는 코로나19 시기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시골살이 유행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았다.
방송국 PD였으니까 이 집으로 콘텐츠를 해보자 해서 근데 사실 인기가 많을 줄 몰랐고 집은 시간만 있으면 됐는데 그게 그 집은 3개월 동안 너무 좀 떡상해 버린 거예요.
최별 씨는 서울로 직장 복귀를 하게 되면서 비워둘 집이 망가질 것을 염려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서점을 열었고, 현재는 아버지가 책을 지키는 역할을 맡으며 부녀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최별 씨는 처음 집을 수리할 당시 혼자 살 생각이었기에 문을 없애고 개방형 구조를 선택했다.
수리 후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음에도 문이 없는 방 구조에 대해 아버지는 의아함을 표했으며, 이는 최별 씨의 과거 독립적인 공간을 선호했던 경험이 반영된 결과이다.
최별 씨는 스무 살 때 고시원에서 시작해 반지하, 1층, 옥탑방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거쳐 지금의 집에 정착했다.
과거 고시원 문이 닫힌 벽처럼 느껴졌던 반면, 창문의 크기가 삶의 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였다고 회고하며, 현재 집의 뛰어난 채광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가장 싼 방 조금 더 돈을 한 달에 3만 원 추가했더니 반지하로 옮길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뭐 조금 더 1층 뭐 옥탑방 그리고 창문이 큰 방 뭐 이렇게 가게 되는 거예요.
과거 이불을 보관하던 벽장은 이제 최별 씨의 엄마 대본을 보관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라디오 드라마 작가였던 엄마의 흔적들을 벽장 안에 간직하며,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최별 씨는 네 살에서 여섯 살 무렵, 가족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 집이 주는 감성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가족의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시골집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최별 씨는 고등학생 때 엄마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후 깊은 상처를 겪었다.
가족 중 한 명의 부재를 의자 다리에 비유하며 가족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파괴적인 감정을 겪었음을 표현했고, 이후 10년 넘게 떨어져 지내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갈등 관계를 지속했다.
Get this channel’s next video as an article by email.
아버지 최찬석 씨는 정원을 가꾸는 행위를 통해 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정원은 딸을 위해 꽃을 보며 살게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투영된 공간이며, 딸은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는 것을 오랜 세월의 업보를 씻어내는 수행과 같다고 느낀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큰딸 최진 씨가 회고했다.
아버지가 동생의 외출을 알고 있었으며 깊은 슬픔과 미안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음이 먹먹해졌다.
최별 씨는 친구 집에서 경험한 평범한 식사 풍경을 재현하고자 아버지에게 술상을 차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그동안의 외로움과 속마음을 처음으로 털어놓았고, 형제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내와도 이별한 개인적인 상처를 딸과 공유하며 눈물을 흘렸다.
최별 씨는 집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와 화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가 단절됐던 부녀는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소통을 시작했다. 딸은 책방 손님을 맞고 아버지는 정원 일을 돌보며, 일상을 연결해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최별 씨는 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방을 현관 앞 개방형 구조로 배치했다.
원래 가장 큰 창이 있던 위치를 주방으로 삼아 김제 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조망권을 확보했다.
그녀는 평야가 내다보이는 주방을 원했으며, 이곳에서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공간의 가치를 역설했다.
아버지 최찬석 씨는 집을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정의했다.
집은 기쁨이나 외로움 등 어떤 감정 상태로든 가족이 찾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며, 이곳에서 가족의 의미와 집의 본질을 재확인한다.
Answers come from the transcript, with the exact spot cited.
Want the next video from EBSDocumentary (EBS 다큐) too?
When EBSDocumentary (EBS 다큐) publishes, we'll write it up like the one you just read and email it to you.
EBSDocumentary (EBS 다큐) published 154 in the last 7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