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AI 기업의 과도한 투자·차입 우려 본격화
월가에서는 최근 AI 기업들의 과도한 투자와 차입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박신영 기자는 AI의 수익화 시점과 규모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 기업들의 투자 및 차입 규모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오라클이 지목된다. 월가는 오라클의 회사채 등급과 수익률이 전체 AI 회사채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간판주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IA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영업 중심 기업이 AI 데이터센터 투자로 부채를 키우며 월가의 시험대에 올랐다
월가에서는 최근 AI 기업들의 과도한 투자와 차입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박신영 기자는 AI의 수익화 시점과 규모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 기업들의 투자 및 차입 규모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오라클이 지목된다. 월가는 오라클의 회사채 등급과 수익률이 전체 AI 회사채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간판주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라클은 기존 클라우드 사업의 확장을 위해 컴퓨팅 및 데이터센터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섰고, 이를 위해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월가는 오라클이 미래의 컴퓨팅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선제적으로 투입하고 조달한 자금으로 충분한 수익을 창출하는지, 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원리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것이 AI 투자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오라클은 원래 기업들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 회사로 출발했다. 역사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레리 엘리슨, 밥 마이너, 에드 오츠 세 사람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1970년 IBM 연구원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라는 새로운 기술을 발표했는데, 엘리슨은 이 기술의 상업적 가능성을 알아보고 회사를 세운 뒤 이를 더 상업적으로 만들었다. IBM보다 빠른 행보였다. 오라클의 초기 고객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었다. 엘리슨은 그 전에 컴퓨터 장비 업체 엠팩스에서 근무하며 CIA의 대규모 데이터 저장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고, 그때 프로젝트의 암호명이 '오라클'이었다. 훗날 회사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1977년 창업 후 오라클은 CIA 프로젝트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정부 계약을 확보했다. 이후 미국 공군 등을 고객으로 확보했고, 금융기관과 제조업체 등 민간 대기업 시장에도 진출했다. 1983년에는 다양한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작동하는 데이터베이스를 출시했다. 기업들이 서로 다른 컴퓨터를 쓰더라도 오라클 제품을 도입할 수 있게 하면서 시장을 빠르게 넓혀 나갔다.
오라클이 더 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로는 레리 엘리슨 특유의 공격적인 영업 전략이 꼽힌다. 오라클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영업이 가장 공격적인 회사로 유명했다. 엘리슨은 경쟁사를 이기는 수준을 넘어 시장에서 밀어내겠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경쟁사의 고객과 잠재 고객을 미리 확보해 먼저 공략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내부에서는 경쟁사의 '산소를 차단해야 한다'는 표현까지 쓰였다. 당시 오라클 영업 조직의 분위기는 상당히 살벌했다. 이 무렵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다. 베니오프는 1980년대 오라클에서 일하며 20대에 연간 30만 달러를 벌었고, 당시 최고 실적을 올리는 영업사원은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벌기도 했다.
회사는 계약을 따오는 사람에게 엄청난 보상을 줬고, 계약을 따오지 못하면 회사로 복귀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베니오프도 회상하기를 고객의 서명이 들어간 계약서를 받아오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 회사 지침이었다고 전했다.
오라클은 제품 판매에도 공격적이었다. 보통 기업은 제품을 완성한 뒤 판매하지만, 오라클은 고객에게 먼저 제품의 기능을 약속하고 개발팀이 나중에 그 기능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영업하기도 했다.
베니오프는 엘리슨이 자신의 제품 시연에 문제가 있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아직 가능하지 않은 미래의 기능을 마치 지금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영업하는 방식은 오라클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영업 문화는 결국 큰 위기로 이어졌다. 1990년 오라클은 실적 부진과 회계 문제로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 미래에 받을 매출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반영했던 영업과 회계 관행이 문제가 됐다.
이 여파로 주가는 폭락했고, 회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도 했다.
오라클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사업이 성공했다고 해서 그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오라클의 특징이자 레리 엘리슨의 경영 방식이기도 하다.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에서 기업 소프트웨어로, 다시 하드웨어와 클라우드로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피플소프트 인수다. 오라클은 2003년 피플소프트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추진했고, 피플소프트 경영진이 강하게 반발했다. 법적 분쟁과 규제 당국의 심사까지 이어졌지만 오라클은 인수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2005년 약 103억 달러에 피플소프트를 인수했다.
경쟁사를 직접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오라클의 전략이 잘 드러난 사례다. 이후 오라클은 또다시 거대한 사업 전환을 추진했고, 이번에는 AI 클라우드다.
기존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아마존 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가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오라클은 상대적으로 늦게 출발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I 기업들은 대규모 GPU와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하고, 오라클은 이 시장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판단했다.
2026 회계연도 기준 오라클의 전체 매출은 약 674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클라우드다. 클라우드 매출은 약 340억 달러로 전체의 50.5%를 차지해 오라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섰다. 기존 소프트웨어 매출은 약 245억 달러로 36.4%에 그쳤다. 오라클의 매출 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27 회계연도 1분기 기준 오라클의 전체 매출은 약 193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클라우드 사업은 약 60%를 차지한다. 전년도에는 연간 기준으로 절반 수준이었으나 60%까지 확대된 것이다. 장기 계약 규모도 크다. 오라클의 장기 계약 잔고(RPO)는 약 6,640억 달러에 달하며, 2027 회계연도 1분기에만 300억 달러 이상의 신규 AI 클라우드 계약을 확보했다.
같은 기간 오라클은 공급 능력도 빠르게 확대해 데이터센터 용량을 850MW 추가하고, 고객에게 GPU 30만 개 이상의 컴퓨팅 능력을 공급했다. 공격적으로 컴퓨팅 자원을 공급하고 판매하려면 그만큼 자금을 공격적으로 조달해 투자해야 한다. 지금 AI 클라우드 사업에는 오라클이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에 투자했던 것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는 한 번 개발한 제품을 여러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다. 반면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컴퓨팅을 확보하려면 먼저 건물을 짓고, GPU를 구매하고,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공급 능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공격적인지는 2026 회계연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2026 회계연도는 2025년 6월 1일부터 2026년 5월 30일까지다. 이 기간 오라클이 발행한 회사채 등 부채 조달액은 430억 달러였다. 주식 발행으로도 약 50억 달러를 조달해, 한 해 동안 부채와 주식을 합쳐 총 480억 달러를 조달했다.
이 가운데 올해 2월에는 한 번에 25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2027 회계연도(올해 6월 1일~내년 5월 31일)에는 약 400억 달러를 추가로 조달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오라클의 부채도 커질 수밖에 없다.
2026년 8월 말 기준 오라클의 총 차입금은 약 1,253억 달러다. 2025년 5월 말 약 926억 달러에서 1년 3개월 만에 약 330억 달러 증가한 것이다. 보유 현금과 유가증권을 제외한 순차입금도 약 883억 달러에 이른다.
AI 데이터센터 확장을 위한 추가 투자도 이어지면서 월가에서는 오라클의 부채 상환 능력과 현금 흐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7 회계연도 설비 투자 전망은 900억~950억 달러 수준까지 제시됐다. 직전 회계연도 전체 매출이 674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해 매출보다 많은 돈을 설비 투자에 쓰는 셈이다.
이 때문에 현금흐름도 악화되고 있다. 2026 회계연도 잉여현금흐름은 -237억 달러였다. 잉여현금흐름은 영업활동으로 번 현금에서 설비 투자 등을 뺀 금액이다. 오라클은 본업에서 현금을 벌고 있고 단기 영업이익도 흑자지만, AI 인프라 투자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우려는 오픈AI에 대한 높은 의존도다. 오라클이 확보한 대규모 수주 잔고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오픈AI와 연결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픈AI가 성장하면 오라클의 매출도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오픈AI가 약속한 컴퓨팅 사용료를 지불하려면 오픈AI 역시 지속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을 성장시켜야 한다. 결국 오라클의 투자 계획은 오픈AI의 성장과 자금 조달 능력까지 연결돼 있는 셈이다.
최근 월가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AI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적극적으로 자금을 빌려줬다. 하지만 이제는 AI 투자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현금을 창출하는지, 기업들이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AI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급증했다. 미국 투자적격 등급 회사채 발행액은 올해 10월 말 기준 약 1조 7,600억 달러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 연간 기록을 넘어섰다.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회사채 공급이 늘면서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신용 스프레드다. 신용 스프레드는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수익률과 비슷한 만기의 미국 국채 수익률 간의 차이다. 지난 9월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AI 관련 기업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는 약 115bp였다. 미국 전체 투자적격 등급 회사의 평균 78bp보다 약 37bp 높은 수준이며, 지금은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투자적격 등급이라도 AI 기업에는 더 높은 위험 보상을 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월가는 막대한 현금을 창출하는 기업과 외부 차입에 의존하는 오라클을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하는 곳이 오라클이다. 오라클의 신용등급은 S&P 기준 BBB-로, 투자적격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이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투기등급으로 강등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회사채 시장에서는 수익률만 놓고 보면 투기등급 기업에 가까운 대우를 받고 있다. 10월 23일 기준 오라클의 2031년 만기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는 263bp까지 확대됐다. 같은 시점 BB 등급 회사의 평균 스프레드인 206bp보다도 높았다. 2056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도 8%대 중반까지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오라클의 회사채가 다른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비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오라클이 장기 임차하기로 한 미시간주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발행된 약 140억 달러 규모의 채권도 최근 오라클 회사채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격이 움직이고 있다.
오라클의 신용 위험이 높아지면 오라클의 데이터센터를 임대하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은행들도 AI 대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브로드컴과 앤스로픽이 약 두 달 동안 대출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들과 협상을 벌였고, 이 거래는 '프로젝트 놀스타'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앤스로픽은 AI 모델 개발과 운영에 막대한 반도체가 필요하고, 그 반도체를 사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 은행들이 선뜻 돈을 더 빌려주지 않으려 하고 채권단에서도 빠지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브로드컴의 폭탄 CEO가 나서서 보증까지 서면서 이 대출의 자금 조달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AI 시장 전체에서 대출, 특히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더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AI 관련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오라클은 10월 28일 2027~2030 회계연도 추가 자금 조달 규모를 총 200억 달러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절반인 100억 달러는 주식 발행으로, 나머지 100억 달러는 부채로 조달할 계획이다.
오라클은 당초 2027 회계연도에만 주식과 부채로 약 400억 달러를 조달하겠다고 밝혔었다. 이번에는 이미 조달한 200억 달러 외에 추가로 필요한 자금이 최대 200억 달러이며, 이를 2030 회계연도까지 마지막 외부 자금 조달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오라클이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AI 산업 전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월가에서는 AI 인프라 기업들의 재무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 기업이 코어위브다. 코어위브는 AI 데이터센터와 GPU 클라우드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코어위브를 비롯한 네오클라우드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도 이런 기업들이 극단적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오라클은 이런 네오클라우드와 구분되는 더 우량한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오라클마저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오라클은 오픈AI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오라클의 투자 등급이 내려가거나 회사채 조달 등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이 부분이 AI 전체 시장으로 퍼질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월가의 시각이다.
다행인 점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평가가 여전히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S&P 글로벌 집계에 따르면 오라클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43명 가운데 35명, 약 80%가 매수 또는 강력 매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막대한 차입 부담으로 우려가 크지만 AI 클라우드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높게 평가받고 있다.
원문에 언급된 궁하임은 10월 29일 오라클을 최선호 종목으로 유지하면서 목표주가 400달러를 제시했다. 궁하임은 오라클이 추가 자금 조달 규모를 200억 달러로 제한하고, 대규모 설비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모건스탠리는 중립 의견과 목표주가 210달러를 유지했다.
자금 조달 계획은 명확해졌지만, 데이터센터를 계획대로 건설하고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확인이 필요하다. 결국 월가는 오라클의 컴퓨팅 수요와 고객 수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투자 비용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지, 충분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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