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멕시코 독립기념일, 광복절 성격의 중요한 국경일
매년 이 날을 기념하며 멕시코인들은 독립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국경 분쟁과 전쟁으로 막대한 영토를 잃었으며,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매년 이 날을 기념하며 멕시코인들은 독립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 게시물은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올라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멕시코는 '신은 멀지만 미국이 너무 가깝다'는 말처럼 지리적·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초강대국 미국과 3,000km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현실은 멕시코에게 국가적 어려움으로 작용해왔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멕시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멕시코 역사상 가장 큰 영토 상실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등 현재 미국 남서부의 광대한 지역이 미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길 이름인 라브레아, 라시에나가 등도 모두 스페인어다.
이는 한때 캘리포니아 지역이 멕시코의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최상위 계층은 스페인 본토에서 건너온 '반도인'(페닌슐라)들이 차지했다.
그다음은 멕시코에서 태어난 스페인 혈통인 '크리오요'가 뒤를 이었으며, 스페인과 원주민 혼혈인 '메스티소'가 그 아래였다. 최하위 계층은 흑인 노예들이었다.
당시 국왕인 까를로스 4세는 국정 운영 능력이 매우 부족하여 왕실의 권위가 흔들렸다.
이에 아들인 페르난도 7세가 아버지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까를로스 4세는 이에 반발하여 나폴레옹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나폴레옹은 이 부자간의 싸움을 이용하여 둘 모두를 압박했고, 결국 스페인 왕관을 강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수 생활을 하던 조세프는 얼떨결에 스페인 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 왕실은 정통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그는 '멕시코 만세, 비바 멕시코'를 외치며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이 날은 매년 멕시코 독립기념일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이달고 신부가 종을 울린 1810년부터 멕시코 독립운동은 11년간 치열하게 지속되었다. 이 오랜 투쟁 끝에 스페인의 통치 체제가 무너졌다.
결국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멕시코는 노예 제도를 폐지한 상태였으나, 멕시코로 이민 온 미국인들은 멕시코 정부의 노예제 폐지 명령을 무시했다. 이들은 멕시코 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자경 경찰단을 만들었다.
이 자경 경찰단의 이름이 바로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미국인들은 사실상 텍사스 땅을 불법 점령하며 멕시코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은 멕시코 정부와의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 영토에 몰려든 미국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정착한 미국인들은 이를 거부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산타 아나였으며, 미국 정착민들은 알라모 요새로 모여들어 멕시코군에 맞서 결사 항전을 시도했다.
멕시코가 빠져라 빠져라 해요. 근데 당연히 거기 당연히 아니죠 와 있던 미국인들은 못 빠지겠다 해요.
알라모 요새에서 멕시코군에 맞서 싸우던 미국 정착민 약 200명은 결국 모두 몰살당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이후 미국 내에서 '알라모'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국봉(국수주의적 자긍심) 영화로 자리 잡았다.
'알라모를 잊지 말자'는 구호는 미국 우익의 상징적인 외침이 되었다.
샘 휴스턴이 이끄는 미국 정착민 군대는 멕시코 정규군을 격파하며 반격에 성공했다. 텍사스의 주요 도시인 '휴스턴'은 샘 휴스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전투에서 멕시코의 산타 아나 대통령은 사병 옷으로 갈아입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결국 발각되어 포로가 되는 굴욕을 겪었다.
대통령의 포로 신세는 멕시코에게 큰 충격과 불리한 상황을 초래했다.
포로로 잡힌 산타 아나는 자신의 사형을 피하기 위해 텍사스의 독립을 허용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는 비록 포로 신세였지만 현직 멕시코 대통령임을 내세웠다.
샘 휴스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텍사스 독립 문서에 산타 아나의 서명을 강행했다. 산타 아나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강압적인 서명으로 텍사스는 사실상 독립하게 되었다.
1836년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 직전으로,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텍사스는 노예제를 허용하는 주였다.
이에 노예제에 반대하는 북부 정치권은 텍사스주가 연방에 합류할 경우 노예제 찬성 세력이 비대해질 것을 우려하여 텍사스 합병을 강력히 반대했다.
미국과 멕시코는 국경을 두고 리오그란데 강과 누에세스 강 중 어느 쪽이 경계인지 분쟁을 벌였다.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멕시코는 누에세스 강을 국경으로 주장했다.
미국은 이 분쟁 지역으로 군대를 보내 멕시코군의 선제공격을 유도했다. 멕시코가 자국 땅에 들어온 미군 병사를 공격하자, 미국은 이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아 전쟁을 시작했다.
1846년 시작된 미-멕시코 전쟁은 1848년 멕시코시티가 점령되면서 멕시코의 패배로 끝났다. 멕시코는 전쟁의 결과로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 국토의 절반을 미국에 할양해야 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미국은 멕시코에게 1,5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5,80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는 미국이 영토를 단순히 빼앗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구매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로써 현재의 미국-멕시코 국경이 확정되었고, 멕시코는 막대한 영토를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자막에서 근거가 되는 대목을 찾아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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