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의 과거: 일선 도시이자 유명 관광지
원본 영상 0:11중국 항저우는 한때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과 함께 중국의 일선 도시로 꼽혔던 곳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서호(시후)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며, 서호에서 생산되는 용정차(롱징차)는 중국 내에서도 최고급 차로 인정받는다. 과거 중국에서 여행을 좀 다녀봤다는 사람이라면 항저우 서호는 반드시 방문하는 명소로 인식될 만큼 문화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도시다.
알리바바를 등에 업고 급성장했던 항저우가 중국 정부의 규제와 경기 침체로 젊은이들이 떠나는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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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저우는 한때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과 함께 중국의 일선 도시로 꼽혔던 곳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서호(시후)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며, 서호에서 생산되는 용정차(롱징차)는 중국 내에서도 최고급 차로 인정받는다. 과거 중국에서 여행을 좀 다녀봤다는 사람이라면 항저우 서호는 반드시 방문하는 명소로 인식될 만큼 문화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도시다.
알리바바 그룹에 입사한 한 젊은이는 항저우에 정착하며 월급도 넉넉히 받았다. 그는 항저우에 위치한 웨이라이커지정(미래 과학 도시) 근처에 집을 빌려 살았다. 한국의 판교 테크노밸리처럼 첨단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은 미래 과학 도시로 불리며 항저우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 그는 자동차 대신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며 편리하게 직장 생활을 했다.
2018년에 알리바바에 입사한 이 젊은이는 4년 차가 된 2021년에 대출을 받아 항저우에 아파트를 구매했다. 한국 평수로 약 22평 규모의 이 아파트는 당시 430만 위안, 한화 약 9억 1천만 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항저우의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활황이었고, 젊은 직장인들도 고액 연봉을 통해 주택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2024년 말, 그는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퇴직 보상금으로 넉 달에서 다섯 달을 버티던 그는 결국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를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매물로 내놓았다. 9억 1천만 원에 샀던 집을 5억 9천만 원으로 대폭 낮춰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동안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항저우 부동산 시장의 심각한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례는 단순히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한때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처럼 꿈을 찾아 몰려들었던 '디지털 경제의 도시' 항저우의 몰락을 상징한다. 과거에는 여행 명소이자 인터넷 경제의 중심지로 불리며 젊은이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이제 그들은 꿈에서 깨어나 항저우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때 희망의 상징이었던 도시가 좌절과 실망의 장소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항저우의 몰락은 너무 빠르게 성장한 도시가 겪는 불안감을 보여준다. 급격한 성장은 도시의 기반을 튼튼히 다질 시간을 주지 못했고, 그 결과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 항저우는 이러한 취약성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성장에만 도취되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알리바바를 중심으로 항저우에서는 완전한 인터넷 산업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인 왕이(넷이즈)가 본사를 항저우로 이전했으며, 세계 최대 영상 감시 장비 제조업체인 하이크비전 또한 항저우로 옮겼다. 상품 판매 라이브 방송 산업 역시 항저우에서 시작되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핀장과 위, 미래 과학성 등 항저우의 주요 지역에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몰려들면서 혁신과 성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집적 효과는 항저우를 명실상부한 중국 인터넷 산업의 허브로 만들었다.
항저우의 GDP는 2012년 7,800억 위안(한화 약 165조 원)에서 2021년에는 381조 원으로 급증하며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이러한 발전은 톈진, 한커우, 청두, 우한 등 중국의 전통적인 대도시들을 차례로 추월하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중국 최대 무역 도시인 광저우의 뒤를 바짝 쫓아갈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광저우가 100년 전통의 상업 도시로 불렸던 점을 감안하면, 항저우가 불과 10년 만에 이룬 성과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항저우의 급격한 성장은 사람들을 일종의 도취감에 빠뜨렸다. 마치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처럼, 사람들은 이러한 발전이 거품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분위기에 취해 향락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러한 부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고, 이는 도시 전체에 안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항저우 몰락의 결정적인 신호는 2020년 11월, 마윈의 앤트 그룹 기업 공개(IPO)가 상장을 며칠 앞두고 긴급 중단된 사건이었다. 당시 마윈은 알리바바의 성공으로 전 세계적인 기업가로 명성을 얻으며 일종의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는 한 스터디 포럼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시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는 중국 공산당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중국에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공산당을 비판하는 것은 숙청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과 같았으며, 이 사건은 마윈과 앤트 그룹, 나아가 항저우의 인터넷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앤트 그룹 상장 중단 이후 마윈은 국제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가 개인의 몰락을 넘어, 중국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무한정 확장할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였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인 규제에 돌입했다. 반독점 조사, 플랫폼 정비, 알고리즘 규제 등 온갖 종류의 규제가 쏟아지면서 인터넷 기업들은 급격한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규제는 한국의 기업 조치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세무 조사가 진행될 때 영장을 제시하고 서류를 압수하는 등 정해진 절차가 있지만,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지시가 떨어지면 어떠한 저항이나 회피도 불가능했다. 돈을 요구하면 달란 대로 줘야 했고, 하지 말라 하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 주석의 직계 라인이 아닌 이상, 공산당의 일방적인 조치에 맞설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강압적인 규제는 인터넷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공산당의 규제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인터넷 업계에 직접 종사하던 직원들이었다. 기업들은 수익 감소와 자금난에 직면했고, 대규모 감원이 시작됐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효율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자금이 부족하여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 주요 인터넷 기업들의 감원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알리바바 역시 2023년 여러 차례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일부 사업 부문에서는 직원의 20~30%가 감원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때 '중국의 인터넷 기업은 부자를 찍어내는 기계'라는 말이 있었지만, 대규모 감원으로 고소득층이 줄어들고 스톡옵션으로 얻었던 자산마저 증발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항저우의 고급 소비 시장은 붕괴되었다. 과거 인터넷 기업 직원들은 이 시장의 핵심 고객이었으나, 이들의 몰락은 도시 전체의 소비 생태계를 끊어놓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부터 '항평오'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과거에는 '항저우에 가서 취직했다'는 말이 성공의 수식어였으나, 이제는 '항저우에 있다'는 말이 '항평오'(항저우를 떠도는 평범한 사람들)를 의미하게 되었다. 항저우 도시 자체가 몰락하면서, 이곳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은 그저 고향을 떠나 항저우에서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외지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항저우가 더 이상 꿈을 이룰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곳으로 위상이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단어다.
항저우는 한때 평범한 사람들도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존재했던 도시다. 명문대 졸업장이나 부유한 집안 배경이 없어도, 카메라 앞에서 말을 잘하고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라이브 커머스와 같은 새로운 산업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학력이나 배경보다는 실질적인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는 많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었다.
당시 중국 항저우에는 웨이야라는 유명 인플루언서(왕홍)가 있었다. 그녀는 젠구 홀딩스라는 회사를 항저우에 설립하고 활동했다. 중국의 대규모 쇼핑 행사 '솽스이'(솔로데이 11월 11일) 하루 동안 웨이야의 라이브 방송에서 발생한 매출액은 무려 4조 2,3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한국의 유명 인플루언서의 1년 수입보다 10배 이상 많은 금액으로, 항저우 라이브 커머스 시장의 엄청난 규모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웨이야의 수입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중국의 여러 상장 회사들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여러 대기업의 한 해 순이익을 한 명의 인플루언서가 넘어섰다는 사실은 당시 항저우를 중심으로 한 라이브 커머스 산업의 과도한 성장과 부의 집중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웨이야 외에도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왕홍들이 많았다. 중국 지방 저가 소비 시장을 기반으로 1억 명 이상의 팔로어를 확보했던 펑샤오양거 역시 항저우에 지사를 두고 활동하며 자신 소유의 건물을 지을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상품 품질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공산당에게 숙청의 빌미를 제공했다. 공산당은 이를 명분 삼아 펑샤오양거에게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했고, 그는 현재 매우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이는 왕홍들의 막대한 영향력과 부가 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당시 항저우의 전자상거래 및 라이브 방송 산업은 왜 그토록 철저하게 단속당했을까? 이 질문은 항저우의 몰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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