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원작, 정확한 창작 시기 특정 어려워… 3,200년 전 추정
원본 영상 2:06김헌 교수는 오디세이아가 언제 창작되어 문자화되었는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게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언제 문자화됐는지, 작품화 됐는지를 딱 특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대략 그냥 3,200년 전 뭐 이렇게 얘기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고대 서사시의 특성상 구전으로 전해지다 뒤늦게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원작 오디세이아의 핵심 줄거리가 공개되며, 오디세우스가 겪은 고난의 진정한 원인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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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교수는 오디세이아가 언제 창작되어 문자화되었는지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게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언제 문자화됐는지, 작품화 됐는지를 딱 특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대략 그냥 3,200년 전 뭐 이렇게 얘기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고대 서사시의 특성상 구전으로 전해지다 뒤늦게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헌 교수에 따르면 호메로스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호메로스라는 사람이 실존했다는 것도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라며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부 학자들은 호메로스가 한 명의 시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여러 명의 작가가 작품을 집필했거나 구전된 이야기를 엮은 편집자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호메로스 논쟁은 고전 연구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김헌 교수는 "저는 이제 프랑스의 고전학자가 한 것과 독일의 다른 고전학자가 한 것을 비교해서 했습니다"라고 설명하며 번역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언급했다. 여러 학자의 해석을 비교 분석하는 것은 고전 번역에서 원문의 다양한 뉘앙스와 해석 가능성을 포착하는 데 중요한 과정이다.
그는 "오디세이는 그 일단 이제 영화를 보시기 위해서 많이들 기다리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요. 일단 저도 아직 안 봤거든요. 요번 토요일 날 보려고 예매해 놓은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서 저는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거는 지금 막 질문하셨던 그 오디세이라는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요거를 충실하게 전달해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작 배경 지식을 제공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영화 관람 전 원작의 세계관과 주요 사건들을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김헌 교수는 "내용을 딱 두 글자로 요약할 수가 있거든요. 하나는 뭐냐면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모험. 두 번째는 집에 딱 들어갔는데 이게 상황이 만만치 않은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큰 이야기 축을 이루지만, 단순히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향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것은 아내와 아들을 노리는 구혼자들로 인해 황폐해진 왕궁이었다. 교수는 "집에 가서 여보 나왔어, 얘들아 나왔어 이럴 수 있는 판이 아닌 아주 험악한 상황이 이루어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얘네들을 처단하지 않으면 오디세우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일종의 복수극이라고 보시면 돼요"라고 덧붙이며,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정당한 위치를 되찾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복수극을 벌여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함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귀환을 넘어선 영웅의 투쟁을 보여주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다.
김헌 교수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다른 영웅들은 짧게는 4~5일, 길어야 열흘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반면, 오디세우스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헤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빨리 돌아간 사람은 4~5일 걸린 경우도 있어요. 오디세우스의 집, 이타카까지 가는데 길어야 열흘이면 충분히 갑니다. 근데 재수가 없었던 게 키테라 그쪽에서 폭풍을 만난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폭풍으로 인해 오디세우스의 함대는 원래 가려던 항로를 벗어나 전혀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건 누가 그 요술을 부린 게 아니라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예요. 신적인 개입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날씨 때문에 그냥 밀려난 거예요"라고 단언하며, 오디세우스의 고난이 전적으로 신의 의지가 아닌 자연적인 우연과 불운에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했다. 이는 오디세이아를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로 보는 것을 넘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겪는 무력감을 조명하는 대목이다.
김헌 교수는 오디세우스 일행이 10년의 여정 동안 여러 지역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설명했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딱 들어오면 사람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갈리는 거예요. 거부하거나 박대하거나 적대하는 경우와, '우리 동네 온 손님이다, 잘 대접해 주자' 하면서 환대하는 쪽이 있어요." 이러한 환대와 적대의 반복은 영웅 오디세우스에게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안겨주며 귀향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환대하는 곳에서는 풍요와 안락함에 빠져 귀향을 잠시 잊고 머무는 경우도 생겼으며, 적대적인 곳에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은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더욱 길어지게 만들었다.
김헌 교수는 키르케 섬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이 겪은 일을 설명하며, 키르케가 준 음식을 먹고 부하들이 돼지로 변하는 사건을 언급했다. 이는 "상징적으로는 그냥 다 포기하고 먹고 마시고 놀겠다는 것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죠"라며 쾌락에 탐닉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를 제압하고 부하들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았으나,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반해 관계를 요구하면서 그곳에 1년 동안 머물게 된다. 김 교수는 이 체류가 "누가 저주를 내리거나 그런 게 아니라 자발적인 체류"였다고 주장했으나, 최욱은 "어느 정도 자발적인 체류거든요"라고 동의하면서도 "근데 꼭 자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 건 또 여신의 위력 이런 것들로 표현이 돼서"라며 여신의 영향력으로 인한 반강제적인 측면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키르케와의 1년은 오디세우스의 귀향 의지가 인간적인 유혹 앞에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차이는 원작의 다양한 해석이나 영화 각색 과정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원전의 내용과 영화적 연출 사이에는 종종 차이가 발생하며, 이는 관람객들이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며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제공한다.
김헌 교수는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노래를 직접 듣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거예요. 도대체 얼마나 멋있길래, 얼마나 좋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빠져드는지"라는 그의 말처럼,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유혹을 피하는 것을 넘어 그 실체를 경험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너희들은 다 귀 막고 노를 저어라. 나는 돛대에 꽁꽁 묶어라"라고 지시했고, 자신은 밧줄에 묶인 채 사이렌의 감미로운 노래를 들었다. 노래에 홀려 몸을 풀고 뛰어들고 싶었지만 묶여 있었기에 충동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지닌 지혜와 용기가 단순한 힘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영리한 전략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오디세우스의 영웅적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 중 하나로 꼽힌다.
김헌 교수는 오디세우스가 신탁을 듣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부하들이 내린 비극적인 결정을 설명했다. 부하들은 "야, 우리가 굶어 죽거나 이거 먹고 가다가 폭풍을 만나서 죽거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먹는 거 마찬가지인데 먹을 거 실컷 먹고 죽자"라고 말하며 태양신의 소를 잡아서 먹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와서 이 상황을 목격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태양신의 분노를 사게 된 오디세우스 일행은 거대한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되고, 결국 오디세우스 혼자만이 살아남아 표류하게 된다. 이 대목은 오디세우스의 여정에서 신의 저주가 아닌,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이기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하들의 욕망이 결국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영영 잃게 만들었고, 오디세우스에게는 더 큰 고난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었다.
김헌 교수는 "칼립소라는 이름 자체가 되게 의미심장한데 ‘가린다’, ‘감춘다’, ‘지운다’ 이런 뜻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이는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게 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역할을 했음을 이름 자체가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렸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늘 슬픔에 잠겨 있었으며, 결국 신들의 개입으로 칼립소의 속박에서 벗어나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김헌 교수는 "이것도 많은 분들한테 얘기하면 '아, 안 간 거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근데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불가항력적인 건지"라며 칼립소 섬에서의 체류가 오디세우스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함을 밝혔다.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사랑하여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디세우스 역시 그곳에서 안락함과 불멸의 삶을 제안받았기에 미련을 가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논점은 오디세우스의 선택과 운명, 그리고 인간적 욕망의 복합적인 관계를 탐구하게 만든다.
김헌 교수는 작품 전반을 살펴보면 포세이돈이 오디세우스의 귀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방해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품 전체에서 보면 포세이돈이 직접 개입해 가지고 오디세우스를 힘들게 하는 거는 몇 건 안 돼요"라고 설명하며,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오직 포세이돈의 분노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10년 동안 얘가 못 돌아갔냐를 포세이돈이 화나서. 그건 아니다. 포세이돈이 자기 아들 때문에 몽니를 부리는 것 때문에 못 갔다 이렇게 해석하면 너무 단순한 거예요"라고 덧붙이며, 오히려 오디세우스가 여정 중에 겪었던 유혹, 부하들의 이기적인 행동, 그리고 그 자신의 판단 착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이는 오디세이아를 단순한 신화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심도 깊게 다룬 서사시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아니, 이게 스포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예, 이런 포인트를 가지고 영화를 보시면 제가 있지, 예, 제가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원작을 미리 아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원작을 어떻게 해석하고 각색했는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 이런 부분을 롤란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처리했는가?' 요런 걸 보시면 돼요"라고 덧붙이며,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찾아보고 감독의 창의적인 시도를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헌 교수는 이타카 왕궁의 위기 상황을 설명하며, 구혼자들로 인해 어머니 페넬로페가 곤경에 처하고 재산이 탕진되는 것을 방관하던 텔레마코스의 변화를 언급했다. "신화적인 개입이 들어가는데, 아테나 여신이 와서 멘토르라는 모습으로 변신해 오디세우스의 절친인 멘토르가 와서 이야기해요." 아테나는 멘토르의 모습으로 텔레마코스에게 나타나 "너 이제 어린애 아니다. 어른이다. 정신 차려라. 너 이러다 엄마도 잃고 왕궁도 잃고 재산 다 뺏기고 죽을 수도 있다. 너 이럴 거냐"라고 질책하며 정신을 차리도록 돕는다. 이에 용기를 얻은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 앞에서 "우리 아버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안 된다. 내가 가서 우리 아버지 찾아보겠다. 우리 아버지 소식을 얻어보겠다. 그래서 만약 진짜 돌아가신 게 확실하면 한 명, 우리 어머니 데려가서 살겠다"고 선언하며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이 여정은 텔레마코스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김헌 교수는 "그 만나서 계획을 짜는 거예요. '내가 네 애비다.' 그리고서 '나의 정체를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라. 나는 그 꼴로 한번 상황을 보고 지금 이 험악한 상황을 너랑 나랑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너는 나, 너밖에 없다.' 그래서 복수를 결의하죠"라고 설명했다. 오디세우스는 늙은 거지 모습으로 변장한 채 왕궁에 잠입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철저한 복수 계획을 세운다. 이 장면은 오디세이아의 후반부를 이끄는 중요한 동기가 되며, 오랜 고난 끝에 마침내 가족과의 재회를 통해 영웅이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되찾는 서사의 정점을 이룬다. 부자간의 굳건한 신뢰와 결의는 오디세우스의 복수극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김헌 교수는 "호메로스는 한 명이 아닐 것이다. 최소 두 명이다. 한 명이 일리아스를 쓰고 한 명이 오디세이아를 썼는데 이 둘이 너무 결이 다르다"고 운을 떼며 이 주장의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오디세이아에는 페넬로페, 키르케, 칼립소 등 중요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여 오디세우스를 시험하고 유혹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 주목한다. "내 곁에 있어라, 내 곁에 있어라' 그러고 저쪽에선 '빨리 와, 빨리 와' 이러고. 그 심리를 여성이 아니면 이렇게 쓸 수 없다"는 것이 여성 작가설의 핵심 근거다. 여성 캐릭터들의 심리와 관계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이를 남성 작가가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고대 문학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오디세이아 작품의 깊이를 재해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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