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성 터에 남은 마사카도의 흔적
원본 영상 0:09도쿄 오테마치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목무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원래 일본 대장성 부지 안에 있었으며, 다이쇼 12년 관동대지진 이후 정부 청사를 짓기 위해 무덤을 철거하려 할 때 이상한 변고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무덤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쇼와 3년에는 국가 기관인 대장성이 직접 나서 마사카도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거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천년 전 역적이 현대 도쿄를 지키는 수호신이 된 배경에는 일본의 독특한 어령 신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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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오테마치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목무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원래 일본 대장성 부지 안에 있었으며, 다이쇼 12년 관동대지진 이후 정부 청사를 짓기 위해 무덤을 철거하려 할 때 이상한 변고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무덤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쇼와 3년에는 국가 기관인 대장성이 직접 나서 마사카도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거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덴교 3년, 서기로는 940년에 토벌군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반역자로서 그의 목은 수도로 보내져 효수되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이 동쪽 나라, 즉 현재의 간토 지방으로 돌아와 현재의 목무덤에 묻혔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이것이 마사카도 목무덤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14세기 초 일본에서는 역병과 재앙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를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원령 소행으로 여겼습니다. 이에 유행승이 마사카도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을 행했고, 엔쿄 2년인 1309년에 마사카도는 간다묘진 신사에 신으로 합사되었습니다. 이후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 성의 북동쪽 귀문 방위에 배치되어, 성을 수호하는 중요한 신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재앙은 때때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러 사건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과거의 다른 사건과 이를 연관 지어 이야기적인 맥락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소문과 믿음의 구조는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어려울지라도, 사람들의 인식을 통해 강력한 현실로 작용하며 특정 인물이나 장소에 특별한 의미를 덧입히게 됩니다.
다이라노 마사카도 외에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일본의 3대 원령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정쟁에서 패배하여 좌천된 후 객사했고, 이후 수도에 재앙이 닥치면서 그의 원령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특히 청량전(清涼殿) 낙뢰 사건과 이어진 천황의 붕어는 미치자네의 원령이 뇌신이 되었다는 믿음을 확산시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뇌신이자 학문의 신이라는 이중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고, 재앙을 내리는 존재 위에 학문의 신이라는 얼굴이 조용히 겹쳐졌습니다.
어령 신앙은 일본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독특한 믿음 체계입니다. 863년 신센엔(神泉苑)에서 열린 어령회(御霊会)는 이러한 신앙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 신앙은 재앙을 내리는 영을 단순히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영의 이름을 부르고, 자리를 마련하며, 공물을 바쳐 위로함으로써 재앙을 진정시키려는 시도였습니다.
고료 신앙의 본질은 두려운 힘을 제사를 통해 질서 안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이는 재앙을 일으키는 원천적인 힘을 단순히 제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종교적 의례를 통해 통제하고 수호의 힘으로 전환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됩니다. 이렇게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를 신으로 모심으로써, 그들의 힘이 파괴적인 방향이 아닌 보호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고료 신앙의 핵심입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다이라노 마사카도와 함께 일본 3대 원령으로 불리는 인물은 스토쿠인입니다. 그는 호겐의 난에서 패배한 후 사누키(현재의 가가와현)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 그는 불경을 필사하며 속죄를 빌었으나, 조정은 그가 경전에 저주를 담았다고 의심하여 경전을 돌려보냈습니다. 이에 분노한 스토쿠인은 자신의 피로 저주의 경문을 쓰고, “이제 나는 대마연(大魔縁)이 되어 황제를 백성으로 만들고 백성을 황제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강렬한 원한을 품었습니다.
스토쿠인의 강력한 원한은 그가 죽은 후에도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가 사망한 지 13년 만에 조정은 그를 스토쿠인으로 추호하며 그의 원령을 달래려 노력했습니다. 막부 말기, 혼란스러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스토쿠인의 영혼을 달래는 제사가 도입되었고, 이는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68년 시라미네진구(白峯神宮)의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신사는 스토쿠인의 원령을 달래고 그의 힘을 국가 수호의 힘으로 전환하려는 의도에서 세워졌습니다. 결국, 두려운 힘을 달래기 위해 모시고, 그 힘에게 보호를 청하는 고료 신앙의 본질이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 것입니다.
같은 고료 신앙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스토쿠인, 다이라노 마사카도 세 원령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의 기억이 남는 방식은 사뭇 달랐습니다. 미치자네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학문의 신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모하여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반면 스토쿠인은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무서운 텐구(天狗)의 모습으로 인식되며 그의 원한이 이어지는 형태로 남았습니다.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목무덤을 둘러싼 재앙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자 수호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이라노 마사카도 목무덤에 얽힌 재앙의 이야기는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인터넷 방송인이 무덤의 비석을 모독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 대중은 이 행동에 대해 강한 비난 여론을 형성했습니다. 그 직후 간토 지방에 폭우와 지진이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 자연재해를 방송인의 무례한 행동과 연결 지어 생각했습니다. 무덤을 훼손한 공사와 몇 년 뒤의 죽음을 연결했던 과거의 사례처럼, 이번에도 무례한 행동과 지진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며 대중의 심리 속에 재앙의 서사가 재생산된 것입니다. 이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사카도의 이야기가 어떻게 일본인의 의식 속에 살아 숨 쉬는지를 보여줍니다.
자막에서 근거가 되는 대목을 찾아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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