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의 의미, 중립에서 공포로 굳어진 과정
원본 영상 1:33전근대 사회에서 '괴'(怪)는 '기암석'이나 '기계'(機械)처럼 단순히 기이하고 특이한 것을 나타내는 중립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1920년대 근대 계몽기를 거치면서 '괴'는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에로그로 넌센스' 문화의 영향과 함께 '그로테스크'의 번역어로 사용되면서, '괴'는 공포와 기괴함을 상징하는 단어로 의미가 굳어졌다.
곽재식 작가와 전혜정 교수가 한국의 학교괴담이 가진 특징과 시대적 의미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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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사회에서 '괴'(怪)는 '기암석'이나 '기계'(機械)처럼 단순히 기이하고 특이한 것을 나타내는 중립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1920년대 근대 계몽기를 거치면서 '괴'는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에로그로 넌센스' 문화의 영향과 함께 '그로테스크'의 번역어로 사용되면서, '괴'는 공포와 기괴함을 상징하는 단어로 의미가 굳어졌다.
현대 괴담은 좁게는 사람을 무섭게 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뜻하지만, 넓게는 근거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치적, 사회적 루머까지 포함한다. 전혜정 교수는 "좀 야만적이거나 좀 폭력적이거나 무서운 얘기라든가 좀 이해가 안 되는 것 좀 요런 식으로 의미가 굳어진 건 1930년대 이후에 그 그로데스크의 번역어까지 겹치면서 이제 그렇게 됐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하며, 괴담의 의미 범위가 단순히 초자연적인 현상을 넘어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되었음을 강조했다.
창작된 공포물은 제작진의 의도적인 기획 아래 만들어진 유희의 대상이지만, 괴담은 출처가 불분명한 채 유통되며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범하는 특징을 지닌다. 전혜정 교수는 "창작물 같은 경우에는 그냥 영화관 딱 끝나고 나오면서 아, 재밌었다 이러면 되지만 괴담은 이거 내 일상을 이제 침입해 들어오는 이야기들인 거죠"라고 설명했다. 즉, 괴담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적 거리감이 핵심적인 공포 요소로 작용한다.
괴담은 문헌 기록상 중세(10세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체록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인류의 선사시대부터 "이런 거 조심해야 한다. 이런 거 하다 잘못해서 끔찍하게 죽는 수 있다"와 같은 현실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과장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곽재식 작가는 사람들이 위험에 대한 경고를 통해 생존 지식을 공유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창귀'나 '호식'과 같이 실존하는 위험이 전설화되어 괴담으로 이어진 사례들이 많다.
과거에는 밤길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괴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곽재식 작가는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유행을 했거든요. 갑자기 산길을 가보니 누가 자꾸 부르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라고 언급하며, 중국과 한국에서 유행했던 '부르는 소리' 괴담을 예시로 들었다. 이 괴담은 실제 호랑이 출현과 같은 위험을 과장하여 사람들에게 밤길의 안전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포 이야기는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소비되며 사회적 경고 기능을 수행했다.
괴담은 종종 금기를 넘어서면 처벌받는다는 구조를 통해 사회의 규칙과 예절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전혜정 교수는 "금기를 넘어서면 너는 처벌을 받을 거야라는 게 항상 있잖아요. 그 금기는 사회에서 꼭 지켜야 되는 것들을 괴담의 형식으로 좀 포장을 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이는 제사상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일상적인 예절을 괴담이라는 틀을 빌려 교육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괴담은 시대가 변해도 공통적인 패턴을 반복하며 500년이 넘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곽재식 작가는 "우리가 예로부터 들어오던 이야기는 무서운 게 있을 때 어떤 그런 종교적인 문구를 읊으면 귀신이 떠나간다는 이야긴데 오히려 그거를 비웃는다라는 이야기가 무섭잖아요"라고 언급하며, 귀신에게 종교적 문구로 대항해도 소용없다는 공통된 패턴이 무섭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 '애귀전'과 2010년대 '이어폰 귀신' 괴담에서 이 패턴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괴담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고 전승되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그 본질적인 공포는 변치 않고 이어져 내려온다.
괴담의 핵심 특징은 짧고 구조가 간단하여 빈칸이 많다는 점이다. 곽재식 작가는 "괴담에서 특징은 일단 기본적으로 얘가 짧아요. 짧고 구조가 간단해서 빈칸이 많아요.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서 이 틀은 그대로 가져가되 내용만 이제 갈아끼우면서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좋은 구조인 것도 굉장한 특징인 거고 그 시대의 불안이 항상 반영되어 있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괴담은 시대의 불안과 부조리를 반영하는 내용물을 쉽게 갈아 끼우면서 계속해서 유통될 수 있다.
국가별 학교 괴담은 각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불안 요소를 반영하며 차이를 보인다. 곽재식 작가는 "서양에서선 학교괴담은 뭐 백놈이라든가 아니면 왕따라든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데 한국의 이 학교 괴담은 좀 공부에 관련됐다든가"라고 지적했다. 서양 학교 괴담이 주로 '백인 놈'이나 '왕따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반면, 한국의 학교 괴담은 '공부', '등수', '도서관' 등 학업 스트레스와 입시 경쟁을 반영하는 소재가 많다.
1993년에 출간된 '공포 특급'은 한국 괴담 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책으로 꼽힌다. 전혜정 교수는 이 책을 "우리나라 괴담 문화에 정말 큰 격변을 불러온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라고 하면 저는 1993년에 출간된 포트급이라는 책을 꼽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특히 엘리베이터를 소재로 한 '너는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에피소드처럼, 아파트라는 대규모 주거 형태가 확산되던 시대의 공포를 괴담에 투영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학교괴담은 1990년대 초 온라인 문화와 함께 급격히 확산되었다. 당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홀로 귀가하는 아이들이 늘면서, 전혜정 교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한 번도 안 가봤던 아이들이 성빈 엘리베이터에서 혼자서 뭐 12층까지 15층까지 가야 되는 그런 경험을 애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던 그 시기의 그런 공포 오싹함을 대변하고 있는 공포물이거든요"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기술의 빠른 성장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도시 괴담이 정착하고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위 아저씨' 괴담은 학교에 갇힌 채 방치되어 죽은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개학날 아이의 시신을 발견한 후, 벽에 남겨진 글 중에서 "나는 수위 아저씨 눈이 제일 무섭다"라는 메시지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전혜정 교수는 "아무도 모른 상태로 교실 안에 혼자 갇혀서 죽은 거예요. 그래서 개학날 아이가 혼자 죽어 있는 아이를 발견을 하고 했는데 벽 안에 막 글 같은 게 남겨져 있을 거잖아요. 근데 거기에 남겨진 글 중에서 '나는 수위 아저씨 눈이 제일 무섭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며, 이 괴담이 귀신보다 사람의 악의가 더 실체적이고 공포스럽다는 반전을 담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생의 운을 바꾸기 위해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괴담은 인간의 욕망과 공포를 자극한다. 곽재식 작가는 "동네 골목에 제일 깊은 곳에 들어가기 전에가 보면 지금 재건축이 안 되고 있어 가지고 버려진 집이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에 가면 화장실이 딴 건물의 별도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가가지고 밤 11시 52분에 시간을 딱 맞춰서 절대 딴 거는 건드리지도 말고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도 말고 등 뒤로 거기에다가 참새 머리를 하나 구해 가지고 던지고 와라"라는 괴담을 소개했다. 이 괴담은 참새 머리부터 시작하여 고양이 머리, 심지어 사람 머리까지 순차적으로 요구하며 성적 향상이나 합격 등 소원 성취의 대가로 끔찍한 행위를 강요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화장실 밑에 누워 희생자를 기다리던 용한 사람의 정체와 연결되며, 인간의 욕망을 이용한 사기극의 형태를 띤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도 괴담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괴담에 내재된 위험 경고 및 세태 풍자 기능 때문이다. 전혜정 교수는 "괴담 속에는 그런 위험을 경고하고 세태를 풍자하는 기능적인 면이 여전히 많이 녹아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어울리고 그 나라의 문화에 어울리는 그런 괴담들이 더 인기를 얻어서 많이 퍼지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 시대와 문화적 배경이 괴담에 잘 반영될수록 그 생명력은 더욱 강화되어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과학의 발달은 괴담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괴담을 양산하는 촉매제가 된다. 곽재식 작가는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면 괴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이용한 새로운 괴담이 또 나올 걸요"라고 예측했다. 2000년대 중반 유행했던 '세균 실험 쥐 탈출 괴담'이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과학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괴담의 소재로 활용되어 대중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괴담의 세계화를 가속화했다. 곽재식 작가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영미권 괴담이나 일본 괴담이 굉장히 좀 빠르게 소개되고 들어오는 그런게 있었죠"라고 언급하며, 과거에는 번역 문제로 괴담이 특정 문화권에 고립되었지만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 즉각적인 공유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백룸(Backrooms)'이나 '꿈속의 아저씨' 사진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괴담 사례들은 이러한 국경 없는 공유의 힘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독자들이 공동으로 창작하고 확장하는 '참여형 괴담'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혜정 교수는 "요즘은 참여형 괴담이 인기거든요. 그러니까 SCP 재단 같은 것처럼 한 사람 SCP 재단이라 세계관을 만들면 되게 많은 사람들이 거기 참여해 가지고 하나의 괴담 세계관을 만들거든요"라고 설명했다. SCP 재단이나 나폴리탄 괴담처럼, 단순한 이야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거대한 세계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참여형 괴담의 특징이다.
한국의 괴담은 이제 'K-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곽재식 작가는 "그래서 K담, K크리피 파스타 세계를 휩쓸도 멀지 않았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의 엘리베이터 괴담은 '코리안 엘리베이터 크리피파스타'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K-크리피파스타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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