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7만 고려인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다
이들은 창문 하나 없는 가축 수송 열차에 실려 6,000km가 넘는 거리를 한 달 넘게 이동했으며, 이 비극적인 여정은 고려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카자흐스탄 스포츠 영웅 황마이 할아버지가 겪은 고려인 강제이주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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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창문 하나 없는 가축 수송 열차에 실려 6,000km가 넘는 거리를 한 달 넘게 이동했으며, 이 비극적인 여정은 고려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선수로서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100명이 넘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육성했으며, 문화체육발전훈장을 수훈하고 10대 명예 스포츠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황마이 할아버지의 아버지 황운정 지사는 1919년 함경북도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1920년대 초반 연해주에서 조선 독립군 부대의 일원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황운정 지사는 1989년 카자흐스탄에서 별세한 후 2019년 대한민국으로 유해가 봉안되었으며,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강제이주 열차에 홀로 탑승해야 했던 황마이 할아버지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소련 당국은 이주 전 고려인들에게 따뜻한 곳으로 가니 옷이나 음식을 챙기지 말라고 기망했으며, 이는 강제이주의 참혹함을 더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열차 안에서 숨진 이들이 발생했을 때, 묻을 삽조차 없어 돌을 모아 돌무덤을 만들어 주어야 했으며, 어린 황마이 할아버지는 열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두려움을 견뎌야 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황마이 할아버지는 강제 이주 열차 안에서 가족과 동료를 잃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증언했다.
열차 이동 중 겪은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가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오히려 살아남겠다는 원동력이 되어 스포츠계에서 큰 업적을 이루게 했다.
발카가 깨지면서 그들은 모두 심연으로 날아갔습니다. 발카가 깨지면서 그들은 모두 불멸의 존재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내게 남은 기억은 이 노래입니다. 그들은 이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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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큰 척박한 지형이었으나, 카라탈강 덕분에 변농사가 가능했으며, 고려인들은 카라탈강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직접 손으로 수로를 파서 개척했다.
우슈토베에서 41년간 거주 중인 고려인 3세 빠샤 씨는 1940년 완공된 카라탈댐 건설에 고려인, 러시아인, 독일인 등 65개 민족이 함께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연해주에서 집단 농장 경험이 있던 고려인들의 기술과 노동력은 척박한 우슈토베 땅을 옥토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려인들이 이주 직후 지었던 임시 거처인 토구를 재현해 보존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의 혹독한 생활 환경을 보여준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땅속에 공간을 만들고 아궁이와 구들을 설치했으며, 좁은 토구 안에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며 생존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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