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과 영화 '암살자들'로 다시 주목받는 의문들
1974년 8월 15일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29주년 경축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영화 '암살자들'이 이 문세광 사건을 소재로 하여, 사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오픈 엔딩 방식으로 의혹을 재조명한다.
1974년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영화화되면서 당시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문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1974년 8월 15일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29주년 경축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영화 '암살자들'이 이 문세광 사건을 소재로 하여, 사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오픈 엔딩 방식으로 의혹을 재조명한다.
사건의 범인 문세광이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소속이었던 점은 당시 북한의 지시를 받았다는 공식 발표와 배치된다.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인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급격히 냉각된 상황에서, 북한의 지시로 인한 범행이라는 주장은 실제 실행 과정에서 여러 허점을 드러냈다.
문세광이 일본 내에서 총기를 탈취하는 방식과 사격 훈련 없이 범행에 임했다는 점 등이 당시 수사 결과와 맞지 않아 의혹을 더한다.
조총련이 문세광에게 직접 총기를 구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세광은 범행 이전까지 총을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었던 인물로 알려졌다.
문세광이 일본 파출소에서 총기를 탈취한 과정도 수사 기록상 의문이 많으며, 총기 사용법을 모르는 인물이 암살 임무를 맡았다는 점은 음모론을 부추긴다.
자 지금부터 약간 허점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 조총련이 총은 네가 구해라. 문세광은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총을 한 방도 쏴본 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문세광이 사용한 38구경 리볼버 '칩스페셜 에디션'은 가늠자가 없어 조준이 어려운 근거리 호신용 총기였으며, 원거리 암살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러한 총기를 사격 훈련 경험이 없는 문세광이 사용했다는 점은 범행의 진정한 목적과 배후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문세광은 내연녀 남편인 요시이 유키오의 신원을 도용해 위조 여권을 발급받았다. 당시 우리 영사관은 이 허술한 비자 심사 과정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당시 우리나라 영사관의 비자 발급 과정이 허술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어떻게 위조 여권으로 입국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남편 이름을 와다 씨가 써서. 이게 다 이해가 돼. 훔친단 말이야. 그래가지고 안았다는 남편 이름을 내가 왔다 씨가 도용 좀 하다 됐을까? 요시이 유키오라는 불륜의 남편 이름을 딴 위조 여권 가지고 입국을 해요.
문세광은 총기를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 내부에 숨겨 공항 보안을 통과했으며, 총기의 내장을 제거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반입했다.
나중에 서울 경시청 조사에서 범행에 이용된 포드 20M 차량이 미등록 차량임이 확인되었고, 차량 렌트비로 당시 구급 공무원 월급의 절반에 달하는 1만 원이 지불된 점도 의문을 남긴다.
문세광은 비표가 없었음에도 일본 대사관 소속이라고 속여 행사장에 진입했다.
당시 8.15 경축 행사에 일본 대사가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일본 대사관 직원이라는 말만으로 경비가 통과시켜주었고, 금속 탐지기가 있었음에도 허리춤의 권총이 적발되지 않은 점은 경호의 심각한 허점을 보여준다.
문세광은 긴장한 나머지 총을 들다가 자신의 허벅지를 쏘는 오발 사고를 냈으며, 첫 번째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체포 후 며칠 뒤 조사에서는 멀쩡히 걸어 다녔다고 기록되어 있어 오발 사고의 진위와 문세광의 부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가 소지했던 리볼버는 5연발이었는데, 첫 발은 오발, 두 번째는 방탄 연단에 맞고, 세 번째는 불발로 기록된 점도 석연치 않다.
박종규 경호실장이 총기를 떨어뜨리는 모습이 포착됐으나, 당국은 문세광이 쏜 4발 중 1발이 육영수 여사를 적중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 음성 분석 결과 총 7발의 총성이 확인되어 공식 발표와 3발의 차이가 발생했으며, 나머지 총성 출처와 경호실의 현장 정리 행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문세광은 육영수 여사의 좌측에 있었고, 총격 충격으로 몸이 왼쪽으로 쓰러지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육영수 여사는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이러한 피격 자세의 역설과 함께 음성 분석에서 경호실 총기와 다른 제3의 총성이 확인되면서 제3의 저격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문세광은 체포 후에도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사형 선고를 받고도 7~8년 복역 후 모범수로 출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건 발생 2~3개월 만에 사형이 집행된 점은 의문을 남겼으며, 당사자 역시 육 여사 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사형 직전 문세광이 남긴 유언 중에는 '내가 그놈들에게 속은 내가 바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납치 당시 현장에는 영사관 소속 차량이 동원됐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타국 영토에서 공작을 벌인 사례로 기록된다.
납치 당시 영사관 소속 차량이 이용되었으며, 폐차할 차량의 번호판을 사용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영사관 차량을 그대로 이용한 점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가 김대중 납치에 중앙정보부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며 일본 측에 책임을 전가했다.
의혹을 보도한 요미우리 신문 서울 지국을 폐쇄 조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며 사건의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모습을 보였다.
문세광이 재일교포로서 조총련의 사주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1974년 8월 15일 피격 사건이 양국 보상 차원의 역공작이었다는 설이 제기됐다.
당시 당국이 조총련의 개입을 부각한 것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양국 간의 보상 차원에서 합의된 약속 대련일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문세광은 사형 직전 "내가 그놈들에게 속은 내가 바보"라는 유언을 남겨 사건의 배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현장 총성 분석 결과 7발이 발사되었으나 문세광은 4발만 발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육영수 여사가 맞은 탄환의 경로와 나머지 발사된 2발의 행방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주도자이자 외무부 장관을 지내다 월북한 최덕신은 당시 현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정면이 아닌 후두부, 즉 뒤에서 총탄을 맞았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증언은 육영수 여사의 피격 위치에 대한 공식 발표와 크게 엇갈리며 사건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집도의들이 총탄 방향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회피했던 점도 최덕신의 주장에 힘을 싣는 대목으로 지적된다.
자막에서 근거가 되는 대목을 찾아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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