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과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다
과거의 인연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멈추는 데서 깨달음은 시작된다.
나이, 성별,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생각을 멈출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모든 인연과 생각을 내려놓고 본래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다.
과거의 인연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멈추는 데서 깨달음은 시작된다.
나이, 성별,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생각을 멈출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법상스님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생각은 선악과 시비 등 이분법적 판단에 기반한다.
분별심을 완전히 쉬고 멈추면 본래 면목이 드러난다.
본래 면목은 학습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춰진 성품이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때에 어떤 것이 해명상좌의 본래 면목입니까 하고 물었어요.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본래의 성품임을 법상스님은 다시금 분명히 했다.
분별이 없어도 보고 들으며 감각을 알아차리는 작용은 저절로 일어나며, 이것이 본래 성품의 발현이다.
주관과 객관을 나누기 이전의 상태가 본래 면목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법상스님은 공부를 할 때 지적인 이해나 논리적 분석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조언했다.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마음은 있더라도, 그저 모르겠다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생심으로 답을 구하고 머리로 파악하려 드는 것은 진정한 수행이 아니다.
오직 모르는 상태인 '원통 모름' 그 자리에 머물러 궁금해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화두 수행의 본질이다.
법상스님은 언하대오(言下大悟)처럼 말 끝에 문득 깨닫는 찰나의 확인은 본래 있던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허탈하거나 당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은밀한 비법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처음에 가질 수 있지만, 깨달음은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비 체험이나 삼매 현상이 곧 깨달음인지는 면밀한 구별이 필요하다.
확인한 것이 '늘 있었고 지금도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 특정 시점에 있었던 신비 체험이 다시 사라진다면 그것은 가짜 체험이다.
참된 비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법상스님은 말한다.
사람들의 관심은 항상 대상화된 바깥 세상으로 향해 있으며,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대상을 향해 프래시를 밖으로만 비추기 때문이다.
반조(反照)는 빛을 돌이켜 자기 자신을 비추는 수행으로, 외부에 있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참된 공부란 수행이라는 원인으로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얻는 과정이 아니다.
중생이 인과에 집착해 괴로움을 겪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수행의 본질이며, 공부는 '인과'를 넘어선 '비인과'의 차원이다.
깨달음을 바깥에서 찾으려는 치구심(馳求心)을 멈추는 것이 반조의 시작이라고 법상스님은 말한다.
답을 구하려는 바로 그 주체로 돌아오는 것이 핵심이며, 질문하는 자가 곧 답이자 본래 구족되어 있는 자성이라는 것이다.
뜨거운 물을 마셔봐야 차고 뜨거움을 스스로 알듯 깨달음 역시 직접 체험해야 한다.
깨달음은 외부 지식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닌 본래 갖춰진 능력이며, 수행 없이도 본래 깨달음의 기능은 작동한다.
마치 물을 직접 마셔보고 차갑고 뜨거움을 스스로 아는 것처럼 깨달음은 직접적인 체험의 영역이다.
방편을 목적과 혼동해 손가락만 쳐다보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방편을 목적과 혼동하여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염불, 독경, 좌선 등은 모두 무위법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법상스님은 근기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이법'으로 둘을 나눠 단계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이를 방편이라 부른다고 말한다.
염불, 독경, 좌선, 절 등의 수행은 생각을 멈추고 분별을 끊는 방편이며, 수행자가 염불할 때 대상에 집중하고 잡념을 관하는 것은 무위법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근기가 아직 불이법을 깨달을 만한 근기가 안 되는 사람들은 이법으로 둘로 나누어 놓고 여기서 저까지 가는 방법을 설명해 줘야 되거든요. 그게 방편이라 그래요.
경전과 수행 방법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방편이라고 법상스님은 비유했다.
손가락이라는 방편에 사로잡혀 낙처(본질)를 보지 못하고 경전만 파는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며, 지혜로운 사람은 손가락을 보고 바로 달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상스님은 불성, 자성, 본래면목, 주인공 같은 개념들이 따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임시로 내세운 방편이라고 설명한다.
'십우도'의 비유처럼 소를 찾고 기르는 과정조차 결국 나중에는 소와 나 모두 사라져야 하듯이, 선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은 견성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육조 혜능 스님은 '본래 무일물', 즉 한 물건도 없으며 갈고 닦을 것이 없음을 강조했다고 법상스님은 설명한다.
마음 거울은 따로 닦을 실체가 없으며, 깨달음은 뜨거운 물을 직접 만져보고 다시는 손을 대지 않게 되는 것처럼 체험을 통해 확실히 깨닫는 체험적인 영역이다.
자막에서 근거가 되는 대목을 찾아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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